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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염미정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물건들은 다 오래돼서 버렸어.” 별생각 없이 구시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곧 결혼하니 오래된 물건들을 미리 정리하는 줄로만 알았다. “어차피 내 카드를 네가 갖고 있잖아. 필요한 거 있으면 알아서 사.”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어제 일은 미주가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어. 다음부터는 그럴 일 없도록 해 오늘부터 너희 자매는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알겠지?” ‘사이좋게? 그 말은 곧 우리 자매 둘을 다 곁에 두고 싶다는 뜻 아닌가?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염미정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걸음이 조금 이상한 걸 눈치챈 구시헌이 따라가려 했지만 염미주가 눈을 굴리며 달콤하게 말했다. “언니는 참 좋겠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평생 쓰고도 남는 돈이 있으니까요.” 웃음을 터뜨리며 구시헌이 대답했다. “질투해?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 사줄게.” “오빠, 저는 오빠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너에게 나라는 사람도, 내 돈도 다 줄게.” 말을 끝내자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아 염미정을 가볍게 지나치며 그대로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는 숨을 막히게 하는 뜨거운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예전의 염미정이라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겠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마치 그 방 안의 남자가 더는 구시헌이 아닌 것처럼. 어차피 한 달도 안 남았고 곧 이 집을 떠나면 끝이었다. 염미주가 이 집에 들어온 뒤 둘은 마치 붙어 다니는 그림자처럼 틈만 나면 입을 맞추고 껴안고 흔들어댔다. 염미정은 아무 말 없이 떠날 날을 조용히 세어가며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염미주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시헌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왜 갑자기 가려고? 누가 괴롭혔어?” 염미주는 고개를 저으며 흐느꼈다. “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언니도 저를 못마땅해하니까요.”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배를 감싸 쥐었다. “저 임신했어요. 언니가 이 아이를 못 받아들일 거 알아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지우려고요.” 염미주가 문 쪽으로 뛰어가려 하자 구시헌이 멍하니 서 있다가 재빨리 그녀를 끌어안았다. “안 돼! 지우지 마!” 그는 말하면서도 입술이 떨렸다. “미주야, 그 아이는 내 첫 번째 아이야. 낳아주면 안 될까?”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나는 정말 아이가 갖고 싶었어. 네가 낳아준다면 무엇이든 다 들어줄게. 걱정하지 마. 네 곁에는 내가 있어. 너랑 아이는 아무도 못 건드려.” 염미정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예전에도 구시헌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여자아이가 좋아. 너를 닮은 얼굴에 나 같은 성격이라면 누구에게도 괴롭힘당하지 않을 거야. 남자아이라면 커서 나와 함께 너를 지켜주겠지. 어쨌든 내 구시헌의 아이는 오직 너에게서만 나올 수 있어.”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었던 염미정은 잃어버린 아이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지금 구시헌은 염미주가 임신했다는 말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염미정의 가슴이 참을 수 없이 시리게 아파졌다. 그녀는 숨이 막혀 도망치고 싶었지만 염미주는 끝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언니, 아이는 죄가 없어. 제발 낳게 해줘.” 염미정이 비웃음을 흘리려는 순간, 구시헌이 냉소적으로 끼어들었다. “왜 염미정에게 허락을 구해? 우리 아이 문제를 염미정이 결정하게 할 필요 없어.” 그리고 그는 명령하듯 염미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너는 미주의 식사를 책임져. 미주나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문제 생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그는 덧붙여 말했다. “괜한 생각은 하지 마. 구씨 가문 안주인 자리는 아직도 네 거야. 그건 변하지 않아.” 분노와 모욕감으로 염미정은 몸이 떨렸다. “구시헌, 너는 내가 평생 너만 사랑할 거라고 믿고 나를 이런 취급하는 거야? 잘 들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미주의 시중을 들지 않을 거야.” 구시헌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건 너와 협상하는 게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한겨울 서리처럼 차가웠다. “네가 거절하고 싶다면 네 엄마의 유품과 내가 염씨 가문에 투자한 자금을 생각해 봐...” 그 말에 염미정은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었다. “구시헌, 내가 진짜로 너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어?” 그는 비웃었다. “나는 너를 안 미워할 거라고 생각해?” 염미정은 잠깐 멈칫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이미 떠날 결심을 한 그녀에게 그런 대화는 무의미했다. 결혼까지 남은 시간은 딱 보름,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손해일뿐이라고 판단했다. “좋아. 알겠어.” 그러나 그녀의 양보는 염미주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며칠 동안 염미정은 온갖 심부름에 시달렸다. 염미주는 포도가 먹고 싶다며 포도를 사 오라고 해놓고 막상 사 오면 거부했다. 그리고 국을 먹고 싶다고 해놓고 냄새를 맡더니 토할 것 같다고 했다. 심지어 염미정의 숨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아프다고까지 하며 염미정의 모든 걸 무조건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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