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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차도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시선은 저도 모르게 점점 아래로 내려갔고 윤라희의 살짝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매끄러운 피부와 가느다란 어깨뼈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고 이내 놀란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윤라희는 주사를 맞은 뒤 해열제 몇 알을 더 삼켰고 차도겸은 그녀를 대회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차 안에서 윤라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안색이 불편해 보였다.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데다 방금 약을 먹은 탓인지 온몸에 기운이 없었고, 이미 늦은 시간까지 겹쳐 마음은 더욱 조급했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땐 차가 멈추기도 전에 황급히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태워줘서 고마워. 그럼.” 말을 툭 던지듯 하고는 곧장 안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담당자는 얼굴을 굳히고 그녀를 바라봤지만 창백한 안색에다 병원에서 오는 길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아프다는데 병원도 못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서 준비나 하세요.” 담당자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윤라희의 출전 순서는 10번이었고 지금 막 8번 참가자가 무대를 마쳤다. 다음 순서인 9번은 바로 조서영이었다. 윤라희가 무대 뒤편으로 들어서자, 다른 참가자들이 조서영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서영 씨 파이팅! 오늘 진짜 너무 예쁘다. 얼굴만으로도 만점이에요.” “맞아요. 얼굴도 예쁜데 거문고도 잘 치고 그것도 독학이라면서요? 세상에, 진짜 존경스러워요.” “그러니까요. 전 10년 동안 가야금 배웠는데 아직도 8급인데, 서영 씨는 독학으로 8급이라니, 진짜 천재예요. 완전 내 롤모델이에요.” 이런 칭찬에 조서영은 속으론 우쭐했지만 겉으론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너무 과찬이에요. 저는 그냥 취미로 배우는 거라, 여러분처럼 전공한 분들이랑은 비교도 안 돼요.” “그 취미가 이 정도면 우리 전공생들은 어디 가서 얼굴도 못 들겠네요.” 조서영은 억지 겸손을 이어갔다. “저 정말 별거 아니에요. 예선만 통과해도 감지덕지하죠. 게다가 이번엔 윤라희 선배님도 참가하셨잖아요. 거문고 정말 잘 치신대요.” 그 말에 사람들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윤라희가 거문고를 친다고?’ 처음 듣는 얘기였다. “윤라희가 거문고를 쳐요? 나 그런 얘기 처음 듣는데? 예선 접수할 때도 본 적 없고 대체 어떻게 갑자기 끼어든 거예요?” “이런 사람 진짜 짜증 나. 서영 씨 발끝에도 못 미치면서.” “뻔뻔하기도 하지. 그렇게 욕먹고도 복귀하겠다고 나오다니, 제정신인가.” 조롱 섞인 말들이 이어지다 말고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윤라희가 무대 뒤로 들어오고 있었다.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흩어졌다. 그 순간, 무대 입장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9번 참가자,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조서영은 거문고를 안고 윤라희 곁을 지나가며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라희야, 너 아픈 거야? 안색이 너무 나빠 보여.” 윤라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아?” 어제 조서영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윤라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조서영은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윤라희, 넌 오늘 무조건 질 거야.” 조서영은 자신만만했다. 윤라희가 이 정도로 아픈 상태에, 메이크업도 못하고 무대에 오를 텐데 이길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오늘, 윤라희를 무대 위에서 완전히 밟아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윤라희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이제 곧 연예계에서 사라질 사람에게 말 섞을 이유도 없었다. 이번 대회는 전국 국악 경연대회였기에, 공정성을 위해 사전 촬영 없이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조서영은 참가자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무대에 오르자 관객석은 열광했고 생중계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실시간 채팅으로 열기를 더했다. [아아아 서영이 진짜 예쁘다! 서영아 파이팅!] [우리 서영이가 최고야!] [역시 사극 여신! 한복 입으니까 숨 막히게 예쁘다.] 현장 분위기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고 그 열기는 누르지 못할 정도였다. 조서영은 거문고를 품에 안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순식간에 화면이 실시간 댓글로 도배됐다. [조서영 미모 폭발! 여신 강림!] [진짜 여신이다. 그냥 서영이가 나라 세워...]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석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조서영이 고른 곡은 고전 명곡인 [노을]이었다. 그녀의 연주는 정교했고 곡의 흐름은 부드럽고 섬세했으며 추임새와 기교 모두 안정적이었다. 여인이 이국으로 떠나며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이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현장 관객들은 넋을 놓고 들었다. 심사위원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가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자, 실시간 반응은 더 폭발했다. [서영이 진짜 레전드 찍었다!] [심사위원들도 다 인정하네, 역시 여신!] 연주를 마친 조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기다렸다. 첫 번째 심사위원은 9.5점. 두 번째 심사위원은 9.6점. 세 번째 심사위원은 9.4점. 네 번째 심사위원은 9.5점. 평균 점수는 9.5점이었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다시 한번 환호했다. “와 대박! 현재 최고 점수야! 서영이 최고야!” “진짜 연예인 중에 국악 대회에서 이 정도 점수 받은 사람 처음 아니야?” “그니까! 악기는 거의 다들 취미 수준인데, 이렇게까지 잘하다니 대단해.” 인터넷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조서영의 인기는 또 한 번 정점을 찍었다. 심사위원들의 평도 후했다. 조서영은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히 듣고 있었고 그런 여유 있는 태도에 호감도는 한층 더 올랐다. 요즘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침착한 이미지였다. 무대 뒤, 대기석에서 윤라희는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까지 먹자 약 기운이 몰려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메이크업이나 스타일링은 할 시간조차 없었고 결국 민낯 그대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조서영이 무대에서 내려와 지나가며 윤라희를 흘겨봤다. 그 눈빛에는 조소와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 상태로 무대에 오르긴 하겠어? 쓰러지지나 마.’ 어제 수중 촬영을 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다면 윤라희는 제대로 연주도 못 할 터였다. 조서영은 이번 대회의 1등은 자기 것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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