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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윤태현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강유진이 꾹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떨어졌다. 강유진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셨지만, 통증을 참고 빗자루와 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흩어진 잔과 커피를 치우기 시작했다. 몇몇 동료가 보다 못해 도와주러 왔다. 동료들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서청아 씨가 분명히 얼음 넣고 설탕 빼 달라고 말한 건 우리도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말이 바뀔 수 있죠? 유진 씨, 혹시 서청아 씨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잘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원래 서청아 씨 성격이 저렇대요. 조금만 기분 상하면 바로 표정 굳고, 막무가내로 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윤 대표님이 감싸 주니까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거죠.” “윤 대표님이 누굴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거 유진 씨도 처음 보죠? 앞으로는 더 조심해요. 유진 씨 같은 사람은 저런 집안 아가씨랑 비교가 안 돼요. 서청아 씨 뒤에는 윤 대표님이라는 든든한 사람이 있으니까. 억울해도 결국 유진 씨가 참아야 해요.” 강유진도 동료들이 선의를 담아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유진의 가슴속에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말문이 막혀서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유진이 맡았던 계약서 한 건에서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상대 회사 쪽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상대가 강유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몰아붙였다. 그때 윤태현은 강유진의 편을 들어 줬다. 윤태현은 강유진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끝까지 믿었고 논리로 밀어붙이며 강유진의 억울함을 풀어 줬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서청아가 아무 말이나 던지듯 거짓말을 해도, 윤태현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강유진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모든 잘못을 강유진에게 덮어씌웠다. 강유진은 윤태현의 뒤에서 문제를 수없이 정리해 왔다. 윤태현이 곤란해질 일들을 미리 막고 윤태현이 신경 쓰기 싫어하는 자잘한 일들을 대신 떠안아 왔다. 그런데도 윤태현 마음속에는 그 정도의 신뢰조차 없었다. ‘아니면 태현 씨에게는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은 걸까. 태현 씨는 그저 서청아가 기분 좋으면 그걸로 끝인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강유진은 마음이 무너졌다. 숨이 막힐 만큼 아프고 쓰렸다. 강유진은 한참이나 걸려 바닥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씻고 나와 겨우 숨을 고르는 순간, 윤태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흑설탕이랑 붙이는 핫팩 좀 가져와.” 강유진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윤태현의 별장으로 향했다. 고작 이틀, 사흘 못 본 사이였다. 그런데 기억 속의 별장은 아예 다른 집처럼 변해 있었다. 윤철수 회장님이 예전에 손수 심었다던 복숭아나무는 사라졌었고, 대신 튤립이 정원 잔뜩 있었다. 실내의 검정과 흰색 가구들도 모두 치워지고, 윤태현이 가장 싫어하던 분홍빛과 노란빛이 섞인 색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열장에는 보석과 가방, 선물 상자가 넘치도록 쌓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서청아의 취향이었다. 강유진은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불이 켜진 침실 앞에 서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잠시 뒤 윤태현이 문을 열었다. 윤태현은 물건부터 받아 들고는 그제야 강유진의 얼굴을 한 번 훑었다. 커피는 씻어 냈지만 상처는 오히려 더 선명했다. 상처를 보자 윤태현은 잠깐 멈칫했다. “상처가 왜 이렇게 심해? 병원은 갔어?” 강유진은 고개만 저었다. 윤태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아가 몸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지, 일부러 너한테 화풀이하려고 그런 건 아닐 거야. 너무 마음에 담지 마. 삭감한 월급은 연말 보너스에 넣어서 챙겨 줄게. 이따 병원도 가 봐. 심하면 며칠 쉬고. 휴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절차 밟지 않아도 돼.” “괜찮아요. 어차피 이번 달만 지나면...” 강유진은 퇴사할 거라는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윤태현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저 카드 한 장을 내밀며 강유진의 말을 끊었다. “내 말 잘 들어. 난 청아 환영 파티도 준비해야 해. 그러니 넌 몸부터 추스르고, 회복해.” 미처 하지 못한 말은 강유진의 목구멍에 그대로 걸렸다. “네.” 강유진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카드를 받아 들고 저택을 나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침실 안쪽에서 서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현아, 흑설탕 물이 아직 안 데워졌어? 나 배 좀 문질러 줘.” “지금 갈게. 누워 있어. 움직이지 말고.” 윤태현이 물처럼 부드럽게 대답하는 걸 듣자, 강유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 눈가에는 자조적인 미소가 스쳤다. 강유진도 생리통이 심했다. 회사에서 아파 쓰러져서 동료 손에 이끌려 병원에 실려 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 윤태현은 휴가 처리만 해 줬다. 병문안을 온 적도 없었고, 흑설탕 물이나 핫팩을 챙겨 준 적도 없었다. 강유진은 그때 윤태현이 바빠서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윤태현에게는 강유진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유진은 별장을 나온 뒤 병원에 들러 상처를 간단히 치료하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며칠 집에서 쉬다가 최비서에게서 연회 기획안을 받았다. 꽃 종류부터 디저트 구성, 직원들의 복장까지 요구 조건이 까다롭고 촘촘했다. 준비 시간은 고작 사흘뿐이었다. 강유진은 다시 정신을 다잡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바쁘게 뛰어다닌 끝에 강유진이 준비한 환영 연회는 저녁 일곱 시 정각에 시작됐다. 서청아는 최고급 맞춤 드레스를 입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등장했다. 손님들이 서청아 주변으로 몰려들어 연신 치켜세웠고, 서청아는 그 말에 기분이 풀린 듯 얼굴이 환해졌다. “오랜만인데도 서청아 씨는 예전 그대로네요. 품위 있고, 눈부시고... 환영 연회까지 이렇게 성대하게 열다니요. 윤 대표님의 사랑이 변한 적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네요.” “학창 시절에 누가 서청아 씨한테 고백했을 때, 윤 대표님이 그 사람을 아예 전학 보내게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서청아 씨 앞으로 온 편지는 한 장씩 찢어 버리고, 뒤에서 험담한 사람들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혼쭐내고... 그때 상대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도 들었어요.” “누가 모르겠어요. 서청아 씨는 윤 대표님의 첫사랑이잖아요. 윤 대표님 손바닥 위의 보물이라니까요. 서청아 씨가 오늘 착용한 보석만 해도 가격이 수십억 원은 넘겠죠? 드레스도 전 세계에 하나뿐인 맞춤이라던데... 윤 대표님은 서청아 씨를 기쁘게 하려고 돈 아끼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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