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여미주는 문가희가 일부러 자신을 계속 바쁘게 만든다는 걸 눈치챘다. 그날 수영장에서 문가희의 다른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여미주는 그녀가 그저 무례하고 못된 여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여미주는 살짝 허리를 굽혀 문가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귀찮게 굴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우진이 아니라 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어.” 문가희는 피식 웃으며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주 언니는 일할 때 이렇게 매력적인데 누가 안 좋아하겠어요.” 그러면서 뒤쪽 두 개의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미주는 쪼그려 앉아 똑같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일하는 비행기 안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 다른 장소였다면 이 물은 문가희의 입이 아니라 머리에 쏟아졌을 거다. “존경하는 손님, 제가 직접 먹여드릴 테니 사레에 들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문가희는 당당하게 서비스를 즐기며 입술을 달싹인 뒤 평가를 내렸다. “미주 언니가 직접 먹여주는 물이라 왠지 더 달콤한 것 같네요.” 여미주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께 만족을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 후 30분 동안 안대를 가져다주고 식사 주문을 도와주며 커피를 끓여주는 등 여미주는 10번이 넘게 왔다 갔다 했다. 배석우는 그녀가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비행한 지 거의 한 시간 반이 지났다. 문가희가 복용한 약에는 졸음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어 그녀는 지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여미주는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어 뻐근한 발을 주무르며 무전기로 비즈니스석의 조미연과 교대해 자리로 돌아왔다. 기내 출입구에서 잠시 교대할 때 조미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무장님, 어때요? 까다롭지 않아요?” 여미주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다만 7번 좌석 여성 승객은 몸이 약하고 지병이 있으니 특별 승객으로 여기고 상태를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괜히 비행 중에 또 발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여미주는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