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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어느덧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여미주는 택시를 타고 지석주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아파트 문 앞에 도착하자 낯선 남자가 문을 열었다.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의 몸매를 가졌고 키도 훤칠했다. 여미주는 주소를 잘못 찾았나 싶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지석주가 남자의 뒤에서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소개해줄게. 내 새 남자친구 임지훈이야. 직업은 헬스 트레이너고.” 그러고는 임지훈의 이두박근을 툭툭 치며 말했다. “봐봐. 진 기장님보다 훨씬 멋있지?” “...” 여미주는 사실 임지훈처럼 우람한 남자보다 진우진 같은 몸매를 더 좋아했다. 적당히 균형 잡힌 근육, 넓은 어깨에 좁은 허리, 그리고 봉긋한 엉덩이. 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이고 벗으면 탄탄한 근육이 보이는 그런 몸매를 선호했다.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임지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임지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선한 게 인상이 괜찮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캐리어를 자진해서 받더니 작은 방으로 옮겨주었다. 여미주가 불편해하는 걸 알아챈 지석주가 이렇게 말했다. “편하게 있어. 나랑 지훈이 다 남자를 좋아해. 너한테는... 관심이 없어.” 생리적인 면에서 그들은 달랐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자매’나 다름없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여미주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지석주가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린 채 속삭였다. “너 혹시 문가희 때문에 기장님이랑 싸워서 집을 나온 거야?” 여미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곧 이혼해.” “정말 문가희 때문이야?”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완전히는 아니었다. 진우진과 하룻밤을 보냈던 그 황당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서원 그룹 홍보팀이 재빨리 수습했지만 그래도 라임시 상류층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그 일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연정이 여미주를 찾아와 혼전 계약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고 계약서 내용은 3년 후에 이혼하는 것이었다. 그때 여미주는 진우진에게 첫사랑이자 양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돈 때문에 진우진에게 접근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미주는 망설임 없이 사인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조금 후회되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자는 결국 붙잡을 수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조건을 잘 협상해서 위자료라도 두둑하게 챙긴다면 돈은 그녀의 것이 될 텐데. “미주야.” 지석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사랑 때문에 상처받아 슬퍼하는 줄 알고 어깨를 토닥였다. “이혼이 뭐 큰일이라고. 세상에 널린 게 남자야.” 임지훈이 작은 방에서 나와 맞장구쳤다. “맞아요. 널린 게 남자예요. 미주 씨는 좋은 여자라 남자 찾기 더 쉬울 거예요.” 이런 위로의 말들을 남자에게서 들으니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여미주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샤부샤부를 먹으며 금세 친해졌다. 여미주와 임지훈은 편하게 말까지 놓기로 했다. 다음 날. 지석주는 아침 일찍 비행 일정이 있어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지나가다가 작은 방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는 몸을 기울여 안을 들여다봤다. 여미주도 일찍 일어나 옷까지 갈아입고 화장하고 있었다. 지석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휴가 내지 않았어?” “메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며칠 휴가를 내겠다고 하더라고. 메건이랑 교대했어.” 여미주는 재빨리 파우더를 바르고 화장품 상자를 닫은 후 캐리어를 들고 일어섰다. 그녀의 깔끔하고 단호한 움직임에 지석주는 더욱 의아했다. “7월 비행 근무 시간을 이미 최대치로 채우지 않았어?” “아니. 국제선 단거리 비행은 몇 편 더 탈 수 있어. 휴가 내니까 할 일이 없더라고. 그럴 바엔 돈 버는 게 낫지.” 지석주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미주는 거의 매달 근무 시간을 꽉 채워 일했다. 정말 목숨을 걸고 돈을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석주가 그녀의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5분만 기다려.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너무 일찍 일어났으니까 차 안에서 눈 좀 붙여.” 여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 여미주는 포레스트를 나온 후 미라지아 공항의 회의실에서 진우진을 다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회의실 센터 자리에 앉아 있는 진우진을 봤다.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검은 머리에 짙은 기장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늠름하고 멋있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두 사람 모두 제니스 에어 항공부에서 일하긴 해도 승무원과 조종사의 배치가 고정적이지 않았다. 휴가나 각종 교대 상황 때문에 항상 무작위로 배치했다. 7월에 들어 진우진과 같은 비행기에 배정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미주가 들어왔을 때 진우진의 시선도 거의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자 엄청난 카리스마가 풍겼다. 그녀는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은 후 그의 시선을 못 본 척했다. “이번 항공편에 총 260명의 승객이 탑승하는데 그중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아기가 12명이고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석에 비건 승객 두 분의 기내식을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일반 기내식은 간단하게...” 여미주가 객실 상황을 유창하게 보고했다. 진우진의 맞은편에 앉은 부기장 육성민이 다른 부기장 양태식에게 진우진을 보라고 눈짓했다.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여미주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을 뚫어서 구멍이라도 낼 기세였다. 양태식과 육성민의 두 눈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진 기장님 항상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시는 걸 보면 아내분이랑 사이가 엄청 좋은 것 같은데 왜 사무장님을 저런 눈으로 쳐다보시지? 사무장님한테 관심이 있나?’ 비행 전 준비 회의가 끝났다. 여미주는 한 시라도 머물고 싶지 않은 듯 재빨리 나가버렸다. 비행기 객실로 향하는 유리 복도, 발걸음 소리가 뒤에서 점점 가까워져 오자 여미주는 하이힐을 신은 채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진우진이 두어 걸음 만에 다가오더니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꽉 잡고 낮고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도망쳐?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해? 아니면 켕기는 게 있어서 날 보기 두려운 거야?” 여미주는 돌아서서 턱을 치켜들었다. “괜한 생각 했네. 난 그냥 빨리 객실로 가고 싶었을 뿐이야.” 고요하고 좁은 유리 복도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 진우진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여미주는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진우진의 손을 뿌리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유리 복도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는 즉시 바로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따뜻한 숨결이 귀 주변의 잔머리를 간지럽혔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랍 위에 놓은 이혼 합의서, 무슨 뜻이야?” 여미주는 고고한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차갑게 말했다. “거기에 적힌 그대로야. 지능이 낮은 진 기장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 진우진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굳어졌다. 하지만 이곳은 얘기를 길게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벌을 주듯 여미주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라임 공항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릴게.” 이 말만 남기고는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볼을 꼬집은 게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꾸짖는 듯하면서도 썸 타는 분위기가 흘렀다. 화가 난 여미주가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아, 화장이 다 지워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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