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숨을 내쉬던 그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강도들의 시선이 갑작스레 운전석을 향했다. 그제야 그들은 운전기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눈치챘고 순식간에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짐승 같은 기색을 드러냈다. “어이, 이 아가씨 좀 봐라. 얼굴도 곱상하고 몸매도 죽이는데? 내려서 우리랑 놀자.” 스무 살 언저리쯤 되어 보이는 운전기사 아가씨는 이 소설 속 원래 주인공보다도 겨우 한두 살 많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쓰러진 탓에, 대신 운전대를 잡고 이 먼 길을 달리고 있던 중이었다. 덩치 큰 강도 몇 명이 강제로 그녀를 끌고 내리려 들자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 처절한 외침은 분명히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귀에 닿았지만 정작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만 주고받더니 이내 외면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영업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 온 그녀는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는 편이었다. 눈가에 맺힌 한 방울의 눈물 너머로 절망이 서서히 내려앉는 그 눈빛을 본 순간, 강소희는 그 여자가 마지막 기대마저 꺼져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고 옆에 앉아 있던 김태하와 눈빛을 마주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말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 떼.” 강도들은 아까 누구보다 먼저 돈을 내던 둘의 모습을 기억해 냈는지 비웃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희 뭐야? 조용히 찌그러져 있지 그래?” “나서지 마. 죽기 싫으면.” 도발적인 말투 속에 조롱이 담겨 있었지만 김태하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얼음처럼 냉랭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여자애를 놔줘.” 처음 그는 대화를 통해, 혹은 돈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강도들은 이미 탐욕을 넘어 여자를 희롱하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혹여 강소희가 자신을 말릴까 걱정했지만 정작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