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김나은은 문밖에 서서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유성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감히 그들의 진심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짓밟을 수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든 약봉지를 천천히 움켜쥐었다.
심장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틀렸어. 이번에는 유성이와 함께 영원히 사라져 한주 씨가 평생 찾지 못하게 할 거야.’
유성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던 날, 김나은은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 우리 언제 떠나요?”
유성이가 작은 얼굴을 들어 물었다.
김나은은 유성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마지막 절차만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때 우리...”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맹렬하게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더니 복면을 쓴 남자 두 명이 그들의 입을 막고 거칠게 차 안으로 끌고 갔다.
“웁.”
김나은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누군가 손날치기로 뒤통수를 가격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와 유성이는 절벽 가장자리에 묶여 있었다.
“깼어?”
납치범 한 명이 쪼그려 앉아 칼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 돈 많은 남편한테 전화해서 백억 몸값 준비하라고 해.”
김나은은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안 줄 거예요.”
“헛소리하지 마!”
납치범이 그녀의 뺨을 때렸다.
“네가 그 자식의 부인이고, 아들도 낳아줬는데 돈을 왜 안 주겠어?”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김나은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곧 이혼해요. 그 사람은 우리한테 전혀 신경 안 써요...”
“개소리하지 마!”
납치범이 덜덜 떨고 있는 유성이를 잡아끌어 손톱 틈새에 바늘 끝을 댔다.
“전화 안 해? 그럼 네 아들한테 손가락의 고통을 맛보게 해 주마!”
“안 돼요! 전화할게요!”
김나은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리치며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악!”
유성이의 비명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늘 끝이 아이의 여린 손톱 틈새를 맹렬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엄마... 엄마, 구해주세요...”
아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찢어질 듯 울었다.
김나은은 애간장이 타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제발 그만 하세요! 다시 할게요!”
두 번, 세 번... 열 번.
전화가 끊어질 때마다 납치범은 유성이의 손가락에 바늘 하나씩 더 찔러 넣었다.
아이는 고통에 기절했다가 찬물 세례에 깨어났다.
열한 번째 시도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한주 씨!”
김나은의 목소리가 울음에 부서졌다.
“저 유성이랑 함께 납치당했어요. 백억을 요구하는 데 아니면...”
“뭐 하는 수작이야?”
유한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납치 연기하는 거야? 김나은, 언제부터 이렇게 비열해졌어?”
그녀는 벼락을 맞은 듯 얼어붙었다.
“연기 아니에요! 유성이가 지금...”
“말했잖아. 이미 망했다고.”
그는 쌀쌀하게 내뱉었다.
“한 푼도 없어. 나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써.”
납치범들도 더는 듣지 못하고 전화를 빼앗았다.
“유 대표님, 돈을 안 가져오면 이 두 사람을 죽여 버릴 겁니다! 대표님의 아내와 아이 둘 다 죽게 될 거라고요!”
전화기 너머로 2초간 침묵이 흐르더니 갑자기 송서희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주야, 호영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대...”
유한주의 말투가 곧 다정하게 바뀌었다.
“그래, 데리고 가자.”
다시 전화를 받은 그의 목소리는 원래대로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나는 이런 시시한 연극에 낭비할 시간이 없어. 너희들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냥 죽여.”
뚝...
전화는 그렇게 단호하게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