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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임윤슬이 허운재의 방을 나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열 시 가까이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모두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임윤슬은 부모님 방 앞에 섰다. 불이 아직 켜져 있어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아빠, 엄마, 주무셨어요?” “아니야, 아직 안 잤어.” 방 안에서 박진주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바닥을 분주하게 딛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문이 열렸다. 박진주는 낮에 입었던 옷 그대로였는데 아직 씻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임윤슬을 방으로 들였다. 허웅정은 탁자 위에 그림을 펼쳐놓아 감상하고 있었다. 푹 빠진 사람의 표정이었다. “아빠.” 임윤슬이 그의 옆에 다가갔다. 그제야 허웅정이 고개를 들었다. “윤슬이 왔구나.” 허웅정은 그림을 조심스레 말아 소중히 내려두었다. “너희 아빠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림부터 보겠다고 난리였어.” 박진주가 웃으며 말했다. “취미가 이것뿐이라, 하하하.” 허웅정도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엄마 아빠의 다정한 대화를 지켜보던 임윤슬은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해졌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서로를 대하는 눈빛이 여전히 곧고 깊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불평과 불만 없이 오직 사랑과 배려를 보여주고 있었다. 박진주에게 허진웅은 늘 든든한 기둥이었고, 허진웅에게 박진주는 삶의 모든 활력이자 이유였다. 임윤슬은 문득 생각했다. 그녀와 공지한도 저렇게 나란히 늙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네 오빠 방은 다 정리했어?” 박진주가 물었다. “네. 두 분 방에 불 켜져 있길래 잠깐 들른 거예요.” 임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이랑 유나는 어쩜 그렇게 착해. 아빠가 잘 시간이라고 하니까 둘이 쪼르르 들어가서 스스로 씻고 준비 다 하더라니까. 어린아이들이 어찌나 야무지던지. 교육을 얼마나 잘한 거야.” 박진주는 외손주 얘기만 나오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유승이는 원래도 좀 어른스러운 애예요. 어릴 때부터 저 도와주던 애라. 유나도 올해부터는 스스로 씻고 준비해요. 지난번에는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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