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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하지윤은 목소리를 아주 조용히 낮춘 채 말했다. “주재현, 너도 올 줄은 몰랐어.”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도 깊었지만 어디선가 걷히지 않는 안개가 감싸고 있는 듯했다. 주재현을 바라보는 순간 눈빛 속에 잔물결 같은 빛이 아른거렸다. 주재현의 심장이 살짝 조여들었다.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그는 자신이 하지윤에 대한 감정을 이미 다 털어냈고 이제는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마주한 순간 잊었다고 믿었던 그 모든 집요한 감정들이 꺼진 재 속에서 슬며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응, 오랜만이야.” 그는 일부러 담담한 척 말했다. 하지윤은 억지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일 약혼한다는 이야기 들었어. 축하해.” “고마워.” 한때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은 지금 낯선 사람보다 더 낯설게 어색한 인사만 주고받았다. 최도영의 시선이 하지윤에게 떨어졌다. 예전에는 그도 그녀를 가슴 아프게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큰 파동이 일지 않았다. 그는 차 문을 열며 둘의 조용한 재회를 끊어냈다. “두 사람 밖에 서 있지 말고 일단 타!” 주재현은 매너 있게 하지윤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막 타려던 순간 최도영이 손을 뻗어 막았다. “안 돼. 조수석은 내 여자 친구 전용이거든. 너는 뒷자리로 가.” 황당해하며 주재현이 물었다. “오는 길에는 그런 말 없었잖아? 게다가 여자 친구가 있다고?” 최도영은 조수석 글러브박스를 열고 안에서 립스틱 하나를 꺼내 휘저었다. “나도 스물다섯이야. 여자 친구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냐.” 주재현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를 이렇게 오래 알아 왔지만 연애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여자 친구라니.’ “언제 사귄 건데?” 그는 호기심에 물었다. 그 말에 비꼬며 최도영이 대답했다. “왜? 내가 연애하면 너한테 보고해야 해? 입이라도 맞추려면 너한테 먼저 허락받아야 하냐?”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이렇게 발작하는 듯한 반응이지?’ 주재현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너도 연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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