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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송하린의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앞으로 달려가 민재하의 손에서 합격 통지서를 낚아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경계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 민재하는 그녀의 격한 반응에 잠시 말을 잃었다. “우체부가 너희 집에 아무도 없어서 긴급 연락망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나한테 전화했대. 그래서 대신 사인하려던 거야.” ‘긴급 연락망’이라는 단어에 송하린의 가슴 어딘가가 바늘에 찔리는 듯 아렸다. 그건 오래전의 일이었다. 민재하가 그녀의 전부였던 시절, 세상의 모든 ‘가장 중요한 사람’난에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건... 예전에 바꾸는 걸 깜빡했어. 곧 바꿀게.” 그녀는 더 이상 민재하를 보지 않고 수령 확인란에 이름을 적었다. [송하린] 그 한 줄의 사인으로 송하린과 민재하의 인연은 완전히 끝이 났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결심이 단단하게 서려 있었다. 그때 뒤에서 민재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린아, 그거 하나뿐이야? 내 것도 같이 온 거 아니야? 우리 같은 대학 지원했잖아. 같이 와야 정상 아닌가?” 우체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한 통뿐이에요.” 민재하의 눈썹이 다시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이미 몇 걸음 나아간 송하린을 다급히 불러 세웠다. “하린아! 잠깐만, 그거 한 번 열어봐. 혹시 내 것도 섞여 있는 거 아닐까?” 송하린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그 목소리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미련도 없었다. 확신에 찬 그 한마디에 민재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왜 그렇게 확신해?” 송하린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그녀가 이미 며칠 전에 내린 결심을 말해야 할 때였다. 그 순간, 민재하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오유나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가 전화받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흐느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재하야 어디야? 나 무서워... 누가 계속 날 따라오는 것 같아...” 민재하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모든 신경이 오직 그 한 통의 전화에 쏠렸다. “유나야, 괜찮아!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 위치 찍어서 보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송하린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우린 같은 학교가 아니야. 난 대학교 지원을 바꿨어.” 하지만 민재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이미 뒤돌아 뛰어간 그는 잠시 후 자동차 엔진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갔다. 송하린은 떠나가는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마음속 마지막 흔들림마저 사라졌다. 더 이상 미련도 희망도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 ... 그 후의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송하린은 묵묵히 짐을 정리하며 떠날 준비를 했다. 연화 대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사이 민재하의 SNS는 유난히 활발해졌다. 매일같이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고 어디를 봐도 그 안에는 늘 오유나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오유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환하게 웃었다. 캠핑장에서는 불빛 아래에서 고기를 굽고 그녀가 장난스럽게 바비큐를 입에 물려주면 민재하는 웃으며 받아먹었다. 유명한 여행지마다 ‘인증샷’이 이어졌고 사진 속 두 사람은 언제나 다정하게 나란히 서 있었다. 민재하의 얼굴에는 예전보다 한결 여유로운 웃음이 번졌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 밑에는,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축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둘이 이제 공식 커플이네?] [애들아, 축하해.] [유나 짱이다! 결국 우리 재하 잡았네!] 송하린은 휴대폰 화면을 무심히 넘기며 그 안에 담긴 생생하고 눈부신 장면들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켠이 잔뜩 눌린 듯 묘하게 답답했다.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를 품은 것처럼 무겁고 축축했지만 이상하게도 더는 숨을 막히게 할 듯한 극심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마음이 죽어 간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 며칠 뒤 학교에 서류를 찾으러 간 날. 오후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송하린의 시선이 멀리 게시판 앞에 멈췄다. 그곳에는 오유나가 민재하의 팔에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 카메라를 향해 여러 포즈를 취하며 밝게 웃었다. 민재하는 그녀의 요구에 맞춰 자세를 바꿔주며 그 옆에서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다정하게 서 있었다. 송하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예전의 자신과 민재하를 떠올렸다. 학교의 나무 그늘에서 민재하가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던 날, 복도 끝에서 세상의 비밀처럼 몰래 입을 맞추던 날, 책상 위에서 함께 미래를 그리며 웃던 시간들... “우리 꼭 한서대 같이 가자.” “교복에서 웨딩드레스 입은 네 모습도 보고 싶어.” 한때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그 시절은 이제 와 돌아보니 한낱 아득하고 흐릿한 꿈처럼 느껴졌다. 오유나가 그들의 세계에 나타난 뒤로 모든 것이 뒤틀리고 변해버렸다. 그리고 송하린은 이제야 받아들였다. 민재하와 함께할 미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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