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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전화가 뚝 끊기자, 채가연은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송하린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모, 괜찮아요. 비행기 시간 다 됐어요. 바쁘면 굳이 안 와도 돼요. 원래 배웅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었잖아요.” 그 말에 민지훈과 이서현도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하듯 나섰다. “맞아요, 괜찮습니다. 아이들도 다 커서 자기 일해야죠.” 그렇게 송하린 가족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민지훈 부부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겨진 거실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과 씁쓸한 여운만이 길게 맴돌았다. ... 공항.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기체가 구름을 가르며 높이 올라가자 진동이 발끝을 타고 전해졌다. 송하린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18년을 살아온 도시의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익숙했던 거리, 함께 웃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름까지...모든 것이 조금씩 작아지고 흐릿해지고 결국 하얀 구름 속으로 삼켜졌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이제 다시는... 재하를 볼 일은 없겠지.’ ... 그 시각, 민재하는 오유나와 함께 한서대 신입생 등록을 마치고 있었다. 짐을 들어주고 서류를 챙기고 숙소까지 꼼꼼히 확인 해주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완벽했다. “재하야, 이제 다 끝났지? 우리 밥 먹으러 갈래?” 오유나가 밝게 웃으며 물었지만 민재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피곤해서 좀 쉬고 싶어.” 말투에는 미묘한 피로와 무심함이 섞여 있었다. 사실 그는 어젯밤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채가연의 전화받은 뒤부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이 가슴 한구석에 계속 걸려 있었다. 오유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어. 나중에 연락해.” 그녀가 떠나자 민재하는 혼자 숙소 앞을 나섰다. 한낮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었다. 그는 나무 그늘에 멈춰 서서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 속에는 오랫동안 읽지 않은 메시지들과 아무 말도 남지 않은 공백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잠시 손가락을 멈추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정말 충분했겠지.’ 송하린을 오랫동안 방치했고 그녀의 앞에서 오유나에게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그 정도면 교훈은 됐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 하린이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다시 사귀면 분명 헤어지겠다는 말 못 하겠지?’ 민재하는 문득 송하린이 어느 숙소에 배정됐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학생 안내처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무용과 송하린 학생이 어느 숙소에 배정됐는지 확인 좀 부탁드려요.” 직원은 컴퓨터를 두드리다 말고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죄송하지만 신입생 명단에 그런 이름이 없는데요?” “없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하린이는 이번 학기 신입생이에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직원은 전 학과 명단까지 검색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정말 없습니다. 무용과뿐 아니라 모든 학과에도 그 이름은 없어요.” 그 순간, 민재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끝이 얼어붙듯 차가워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송하린이 통지서를 꼭 쥔 채 급히 자리를 떠났던 그날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끝내 삼켰던 표정이... 그때 울리던 오유나의 전화만 아니었다면 채가연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설마...’ 민재하는 거의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끝으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짧은 신호음 대신 들려온 건 차가운 자동 음성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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