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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배하준은 전혀 화낼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다정한 눈빛으로 동생 배아현을 한 번 스윽 바라보고는 시선을 김가영 쪽으로 돌렸다. “미안하다, 가영아. 우리 아현이가 어려서부터 성격이 좀 직설적이라 거짓말을 잘 못 해. 혹시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면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가 배아현을 어린애처럼 취급하는 어조로 말하자 김가영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피로감이 스쳤다. ‘스물 몇 살이나 된 성인인데 어리긴 무슨.’ 게다가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건 결국 지금 자기 동생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뜻이 아닌가? 평소에는 그렇게 공정하던 배하준이 자기 여동생 앞에서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을 들어버리니, 김가영은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겨우 입꼬리를 올려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난 신경 쓰지 않아. 귀엽기만 하던데, 뭐. 나도 아현이가 좋아.” 억지로 그런 말을 하려니, 김가영은 속이 불편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때 이씨 가문의 도우미가 들어와 식사가 준비됐다고 알렸고 음식이 이미 다 차려져 있으니 아래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김가영은 그걸 핑계 삼아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단정했지만 마음속은 이미 한껏 뒤집혀 있었다. 그 뒤에서 배아현이 최지은의 팔짱을 끼며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지은아, 빨리 가자. 나 너무 배고파.” 그녀의 해맑은 웃음에 최지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현아, 사실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 김가영이 던진 비아냥 따위는 최지은에게 그다지 상처도 아니었다. 그저 살짝 긁힌 정도랄까. “넌 도성에서 계속 활동해야 하잖아. 김씨 가문이랑 배씨 가문이 완전히 등을 진 것도 아닌데, 나 때문에 가영 씨와의 사이를 더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배아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그러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녀의 눈빛이 잠깐 진지해졌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김씨 가문이랑 우리 배씨 가문이 경쟁 구도야. 김씨 가문 쪽은 하는 수법이 너무 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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