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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송여진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셋이 함께 자랐어요. 어릴 적에는 누나라고 부르기도 했다니까요. 기억을 잃어서 조금 버릇이 없어졌지만.” 이 말에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주지한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은요? 왜 안 보여요?” “나를 구하려다 나오지 못하고 죽었어요.” 송여진은 가슴을 칼로 에는 것 같아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그녀만을 사랑하던 소년은 그 화재에서 죽고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주지한과는 이제 함께할 미래가 없었다. ‘주지한, 이번 생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사랑하는 사람과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알콩달콩 잘살아 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 형이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누나가 이렇게 힘든 거 보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주지한도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쥔 것처럼 너무 아파 숨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간주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야심한 밤, 큰 불줄기에 송여진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마치 그날 화재가 일어난 쇼핑몰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밖으로 달려 나와보니 주지한과 함께 심은 해당 나무가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주지한은 한쪽에 서서 송여진과 관련된 물건을 하나씩 불에 던져넣었다. 그중에는 함께 찍은 사진, 함께 작성한 여행일지, 그리고 프러포즈 때 그가 직접 만든 노리개도 있었다. 송여진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숨이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순간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소년 주지한이 해당 나무 아래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진아, 해당 나무에 꽃이 피면 우리 결혼하는 거야.” 송여진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눈물을 삼키려 애썼다. 그때 주지한이 송여진을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놀랐죠. 미안해요. 유진이 해당화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그러더니 송여진의 시선이 닿은 곳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전에 누나와 사이가 좋아서 남겨둔 건지 몰라도 이제는 유진이 있잖아요. 유진이 오해하는 거 싫어요. 그래서...” 송여진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채 태우지 못한 노리개를 주어 다시 불길에 던져넣었다. 전에 주지한이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노리개를 만들면 생이 반복되어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손수 그 노리개를 불태우고 있다. “괜찮아요.” 송여진이 가볍게 말했다. “보면 자꾸만 지한 씨 형이 생각나서 괴로웠는데 잘 된 거죠...” 노리개가 불 속에서 활활 타서 없어졌다. 미풍이 불자 뜨거운 바람이 덮쳤지만 송여진은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너무 추웠다. 송여진이 몸을 돌리려는데 주지한이 손목을 잡았다. 그렇게 한참 어색하게 서 있는데 주지한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날은 미안했어요. 내가 물건을 던지는 바람에 다쳤잖아요.” 이유는 몰라도 절망한 송여진을 보며 주지한은 자꾸만 위로해 주고 싶었다. 송여진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손을 빼고는 자리를 떠났다. “괜찮아요.” 주지한은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떠나가는 송여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2층에서 서유진이 이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를 악무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앞으로 며칠간 별장에는 이런저런 소음이 울려 퍼졌다. 주지한은 송여진을 위해 직접 만든 피아노 방을 부수고 서유진의 무용실로 만들었다. 두 사람이 진솔한 얘기를 주고받던 서재는 서유진의 드레스룸으로 변했다. 주지한은 송여진에게 프러포즈하면서 가꾼 장미를 전부 뽑아 던지고 서유진이 좋아하는 월계화를 심었지만 송여진은 월계화 알레르기가 있었다. 월계화를 심은 날 주지한이 송여진을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했다. “누나,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송여진은 그 부탁이 뭔지 알게 되었다. 월계화 모종이 끝도 없이 별장으로 들어왔고 도우미들은 현장을 꾸미느라 분주했다. 주지한은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직접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챙겼다. “오늘 유진의 생일이라 월계화를 가득 심은 정원에서 생일 파티를 해주고 싶어요. 근데 도우미들이 실수할까 봐 누나가 옆에서 같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철렁한 송여진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주지한이 한마디 덧붙였다. “제발 부탁이에요. 이 집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나밖에 없어요.” 주지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송여진을 바라봤다. “도와줄 거죠?” 송여진이 입술을 꽉 깨물며 겨우 대답했다. “그래요.” 주지한이 활짝 웃으며 작은 주머니에 담긴 쿠키를 건넸다. “유진을 위해서 만든 건데 하나 남았어요. 누나도 먹어봐요. 맛있으면 뒤에 또 가져다줄게요. 오늘 이렇게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에요.” 주지한이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비웠지만 송여진은 그 자리에 선 채 눈물을 뚝뚝 떨구며 중얼거렸다. “이제... 이 쿠키마저도 내 것이 아니구나.” 그해 주지한은 두 사람의 약혼식에 쓰일 디저트와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싶다며 1년을 꼬박 배웠다. 하지만 그날은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늦은 밤, 끝도 없이 터지는 불꽃에 귀청이 따가울 정도였다. 송여진은 구석에 앉아 있었지만 주지한이 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 “유진아, 사랑해. 나랑 결혼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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