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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마치 영화처럼 송여진의 눈앞에 재생되었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끝도 없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파티가 끝나고 현장이 으스스해져서야 송여진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별장으로 걸어가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서유진이 식탁에 앉아 달콤하게 웃었다. “지한아, 이거 꿈 아니지? 정말 프러포즈한 거 맞지?” 주지한은 주방에서 삼계탕을 끓이며 그런 서유진을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봤다. “당연하지.” 주지한이 삼계탕을 그릇에 담아 서유진 앞에 놓아주며 걱정스레 말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안 좋아서 몸보신 잘해야 해. 오래오래 살아야지.” ‘어릴 적부터?’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에 주지한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송여진은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미 손을 놓기로 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기대했다. ‘기억해 내는 건가?’ “언니, 거기 서서 뭐 해요? 얼른 들어와요. 지한이 삼계탕을 끓였는데 언니도 한 그릇 해요.” 서유진의 목소리가 주지한을 사색에서 끄집어냈다. 주지한은 잠깐 넋을 잃었다가 몸을 돌려 송여진을 바라봤다. “누나, 덕분에 오늘 순조롭게 유진에게 프러포즈할 수 있었어요.” 주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삼계탕을 푸기 시작했다. “날도 추운데 따듯하게 한 그릇 해요.” 그러더니 농담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 감기 걸리면 형이 찾아와서 욕하겠어요.” 창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일 파티 현장을 정리하던 도우미들이 토론하는 소리였다. “주 대표님 실종되고 별장이 이렇게 시끌벅적한 건 처음이네.” 목소리가 낮아 문 앞에 서 있던 송여진도 겨우 알아들었다. “그러네. 그런데 여진 아가씨는 어쩐담. 주 대표님과 얼마나 예쁜 사랑을 했는데. 그때 그 일이 있고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대. 옆에서 뜯어말리지 않았으면...” “3년 내내 찾아다녔잖아. 겨우 찾았는데 기억을 잃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니 따지려 해도 상대가 없지.” “이러다 주 대표님이 기억을 찾으면...” 송여진이 눈꺼풀을 축 늘어트린 채 씁쓸함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요. 고마워요.” 다만 송여진은 알았다. 이때쯤이면 서유진은 이미 아이를 가졌을 텐데 주지한이 기억을 찾는다 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송여진이 다시 고개를 드는데 주지한이 덤덤한 표정으로 일찍 쉬라고 말하고는 서유진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송여진은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북받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때 삼계탕에 피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송여진이 다급하게 코피를 닦았다. ‘이때 이미 증상이 나타났었구나.’ 저번 생에는 서유진의 죽음으로 코피가 나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송여진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대충 정리하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며칠간 송여진은 주지한과 서유진을 마주치기 싫어 최대한 외출을 줄였다. 그러다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들려서야 밖으로 나오는데 도우미가 설명했다. “아가씨, 유진 아가씨가 사방이 유리로 된 꽃방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주 대표님이 뒷마당에 있는 천문대를 부수고 다시 지으라고 했어요.” 송여진은 숨이 멎는 것 같았지만 달리 어쩔 방법이 없어 인부들이 망원경을 빼고 벽을 부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마치 그날 주지한이 불태워버린 해당 나무와 노리개를 보는 것 같았다. 18살 생일날, 주지한은 아침 댓바람부터 침대맡을 지키고 서 있다가 송여진이 눈을 뜨자마자 바로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지니야, 나 여기에 천문대를 지을 거야. 우리 결혼하는 날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질 거래. 그 별똥별을 같이 보면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평생 함께할 수 있다나. 나는 다음 생에도 다 다음 생에도 너랑 함께 할 거야.” 주지한의 눈동자에 담긴 애정은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송여진은 주지한이 천문대를 지어 올리고 고가의 장비를 안으로 옮기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하지만 결국 별똥별은 함께 보지 못했고 천문대까지 폐허가 되고 말았다. 송여진은 찢어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이렇게 생각했다. ‘주지한, 우리는 항상 한발 늦어. 많이도 아니고 딱 한발.’ 사방이 유리로 된 꽃방이 지어진 날 밤, 서유진이 월계화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송여진을 불러세웠다. 가볍게 웃으며 내민 서유진의 오른손 약손가락에는 사파이어 반지가 보였다. “이거 지한이 방에서 찾은 건데 딱 봐도 사랑하는 사람 주려고 준비한 반지 같대. 사랑한다면 모름지기 별빛처럼 영원히 눈이 부셔야 한다며 결혼반지로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서유진이 손을 흔들었다. “어때? 예뻐?” 별빛으로 불리는 이 반지는 주지한이 결혼반지로 쓰고 싶다며 경매에서 2,000억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송여진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덤덤하게 말했다. “잘 어울리네.” 서유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나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물건은 별로야. 송여진. 이게 누구 반지인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서유진이 송여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자리를 양보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과거는 아직도 시한폭탄처럼 내 행복을 위협하고 있어. 그러니 시름이 놓여야 말이지.” 서유진이 송여진을 확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송여진, 주지한이 과연 너를 믿을까, 나를 믿을까.” 그러더니 송여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몸을 뒤로 젖히며 그대로 월계화 꽃밭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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