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이렇게 된 게 저 때문만은 아니에요.”
여경민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차갑기만 했다. 다만 표정만큼은 예전처럼 단호하지 않았고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그 모습을 본 허미경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한 줄기의 희망을 본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민아, 넌 사실 이혼하기 싫은 거지? 그저 지난날의 앙금 때문에 그런 식으로 나연이한테 보복하려는 거잖아, 맞지?”
여경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재처럼 식어버린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이혼하고 싶고 말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아니, 그렇지 않아.”
허미경은 여경민을 잘 알고 있었다. 온나연에 대한 여경민의 감정은 몹시 복잡해서 양수민 같은 부류를 대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만약 이혼을 감행한다면 여경민은 평생을 후회와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 결혼은 절대로 깨뜨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연이 걔, 마음이 약해. 지금은 너 때문에 앙금이 많이 쌓였겠지만 내가 가서 잘 설득해 볼게. 엄마만 믿고 기다리렴!”
허미경은 여경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태로운 그를 달래주었다.
“...”
이번에는 여경민도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온나연은 병원을 나와 곧장 이민영의 집으로 향했다.
이민영은 막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마스크 팩을 붙이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그녀는 집에 변태라도 들어왔나 싶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나연아?”
온나연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기겁하며 마스크 팩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온나연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럴 리가 없는데. 걔... 그렇게 빨리 끝낼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설마... 못하는 거야?”
“저리 가!”
온나연은 이민영의 뺨을 한 손으로 꼬집으며 말했다.
“머릿속에 든 불순한 생각들 좀 치워. 나랑 걔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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