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할머니는 똑똑한 분이라 우리가 좀 더 다정한 모습을 보여야 해. 괜히 의심하지 않도록.” 여경민은 앞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춰 온나연에게 설명했다. 온나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순순히 손가락을 굽혀 여경민의 손을 맞잡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랑하는 사이인 척 연기하라는 거죠? 익숙해요.” 왜 익숙하겠나. 여희수가 태어난 후로 몇 년 동안 온나연은 여경민과 함께 참석하는 모든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꿀 떨어지는 부부인 척 연기해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져서 이제는 조금도 허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오랜 시간 여경민의 온갖 스캔들이 터져도 여씨 가문 사람들과 대중들은 밖에서 만난 여자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 여씨 가문 사모님은 오직 온나연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온나연이 손을 맞잡는 순간 여경민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들처럼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손을 잡는 걸로는 딱히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감정이 너무 선명하고 소중하게 다가와서 욕심이 났다. “고마워.” 여경민이 어쩐 일인지 낮은 목소리로 온나연에게 감사를 전했다. “네?” 늘 차갑고 단호한 그의 모습에 익숙했던 온나연은 여경민이 갑자기 예의를 차리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이혼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을 잡는 거라 양심에 찔려서 한 번쯤은 사람답게 행동하기로 한 걸까?’ 하지만 여경민이 무슨 속내를 감추고 있든 온나연은 남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뿐이었다. 별장 거실에서는 백발의 양 갈래를 한 김희숙의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싼 채 온갖 방법으로 달래고 있었다. “엄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해물 죽이에요. 한 입만 드세요.” 해물 죽 한 그릇을 들고 있던 여옥빈이 울먹이며 권했다. 그녀는 집안의 다섯째로 김희숙의 막내딸이자 여경민의 고모였다.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되어가는 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어서 비교적 한가해 남매들은 그녀에게 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