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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온나연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운진각 로비에 도착했을 때, 놀이 구역에서 놀고 있는 여희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마음은 아이를 보는 순간 조금 누그러졌다. 무심코 다가가려던 찰나, 여희수의 우유 냄새 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할머니, 빨리 수민 이모한테 전화해요. 이모한테 게임 가르쳐 달라고 해요. 수민 이모 게임 진짜 잘해요!” 허미경은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참지 못해 욕을 퍼부었다. “네가 몇 살이라고 벌써 게임을 가르쳐? 그 나쁜 년, 속셈이 뻔하지.” “아니에요, 수민 이모가 제일 좋아요!” 평소 얌전하던 여희수는 양수민을 강하게 두둔하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씩씩대며 허미경을 툭 밀었다. “수민 이모랑 있으면 희수가 제일 행복해요!” 허미경도 여희수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았다. 여희수의 작은 손을 잡아 탁탁 몇 대 때리며 말했다. “이 몰지각한 것아, 이런 말을 네 엄마가 들으면 얼마나 속상하겠니!” “엄마는 수민 이모 반도 못해요. 희수는 수민 이모가 좋아요, 수민 이모만 좋아요!” 여희수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울고불고 악을 쓰니 사람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렸다. 온나연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고개를 떨구는 순간 눈물이 제멋대로 뚝 떨어졌다. ‘하... 나연아, 온나연. 너도 참으로 실패했구나. 이 집을 위해 온 마음과 정성을 바친 지 7년, 돌아보니 남편도 딸도 다 남의 편이 되어버렸네. 됐어, 됐어. 다 놓자. 다 필요 없어!’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눈물을 닦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비를 빠져나왔다. ‘제기랄, 현모양처는 집어치워. 착한 엄마도 집어치워. 하고 싶은 사람이 하라지.’ 오늘 밤, 그녀는 잠깐 놀아 보기로 했다. 딱 한 번이라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다. 반 시간 뒤, 온나연은 경시에서 가장 핫하다는 클럽 ‘판클럽’에 나타났다. 영어로 fun club이라는 뜻이었다. 클럽은 수백 평 규모로,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뉜다. 1층은 공용 구역이라 젊고 섹시한 남녀들로 빽빽했고, 뜨거운 음악에 맞춰 마음껏 몸을 흔들었다. 공기에는 술과 호르몬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2층은 고급 좌석. 대개는 각종 집안의 2세 권력자들이 술 마시고 수다 떨며 사냥감을 탐색하는 구역이었다. 온나연이 판클럽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전자음이 고막을 때려 귀를 움켜쥐었다. 심장도 쿵쿵쿵 요동쳐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첫 반응은 돌아서서 나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멈칫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편함을 정면으로 견디며 오기를 품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전통적인 의미의 모범생이었던 그녀는 학교에서 성적이 항상 좋았다. 졸업 후 2년도 채 안 돼 여경민과 결혼했고, 2년 뒤에는 여희수가 태어났다. 일에서도 성실 그 자체라 매일 집과 직장만 오갔고, 이런 불건전한 곳이라 불리는 클럽이나 바에는 와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믿었다. 세속이 옳다 여기는 길을 택하면 세속이 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거침없이 뺨을 후려쳤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착하게 살아야 하지? 가끔은 나쁜 여자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온나연은 술을 시켜 고개도 들지 않고 들이켰다. 그리고 비틀비틀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무도장에는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다. 술기운을 빌려 그녀는 있는 힘껏 자신을 풀어냈다. 음악을 따라 두어 번 튀어 오르다 그만 한 젊은 여자아이의 발을 밟고 말았다. 젊은 여자는 핑크빛 염색 머리에 반짝 비키니를 걸쳤고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 눈 좀 뜨고 다녀. 뛸 줄 모르면 끼지 마!” “요즘 판클럽 문턱이 너무 낮아. 시골티 팍팍 나는 사람도 다 들여보내네. 진짜 재수 없어!” “맞아, 이렇게 보수적으로 입은 거 보니까 딱 주부야. 이 시간에는 집에 가서 애나 봐!” 그녀의 친구 몇 명도 킥킥대며 온나연을 실컷 조롱했다. 온나연은 화도 나지 않았다. 요즘 애들 입이 너무 거칠구나 싶어 안목 한번 넓혀 주기로 했다. “누가 내가 춤 못 춘대?” 그녀는 눈썹을 힐끗 올리고 비웃듯 젊은 애들을 훑었다. “언니가 춤 좀 출 때, 너희는 아직 분유 먹고 다녔거든!” 말을 마치자 그녀는 보수적인 겉옷을 벗어 손가락에 걸고는 폴짝 옆으로 던졌다. 외투 안에는 검은 실크 슬립 드레스가 그녀의 선을 매끈하게 감싸고 있었다. 유연한 라인이 허리를 완벽히 살려주었고, 술 장식이 달린 자락 아래로 드러난 한 쌍의 다리는 균형 잡히고 길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화장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요정 같았다. 여자는 두어 걸음에 무대 중앙으로 갔다. 그곳에는 폴대가 하나 곧게 서 있었다. 온나연은 등을 폴에 붙이고 재빨리 브리지로 꺾었다. 짧은 머리칼이 뺨을 스치며 공중에 예쁜 곡선을 그렸다. 이어 두 팔로 폴을 감싸 쥐고, 긴 두 다리를 뱀처럼 폴에 감아올렸다. 몸의 굴곡은 금속과 맞물려 극치의 형상을 빚어냈다. 섹시라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의 섹시였다. 아래의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특히 몇몇 젊은 남자들은 눈이 커져 침을 꿀꺽 삼켰다. 누가 알았겠는가. 주부에게 이렇게 유혹적인 면이 있었을 줄이야. “역시 좀 아는 여자가 최고네. 끝내준다!” “선언하겠습니다. 언니는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있어요! 완전 대박이다...” 클럽 2층, 가장 높은 좌석. 한 쌍의 길고 깊은 눈동자가 무대 중앙에서 뜨겁게 춤추는 온나연에게 오래 고정되어 있었다.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탁자를 은근히 두드렸다. 능수능란한 사냥꾼이 먹잇감을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아래 좀 봐요. 다들 정신 나갔네!” 한재민이 남자의 뒤에 서서 그의 시선을 따라 온나연을 바라보더니 아첨하듯 말했다. “사장님, 저 폴댄스 추는 분 덕분에 우리 가게 오랜만에 열기가 장난 아니에요. 저분... 제가 한 번 소개할까요.” “...” 임창수는 얇은 입술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재민에게 매서운 매의 눈빛을 한 번 던졌다. 한재민은 바로 자기 뺨을 한 대 때리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주제넘었네요.” 조명은 점점 더 몽환적이고 화려해졌고, 음악은 점점 더 격렬하고 요염해졌다. 술의 힘을 빌린 듯 온나연도 점점 더 대담해졌다. 유려한 몸은 곧은 폴을 타고 마음껏 피어올랐다.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무대 아래 남자들은 자기 우상을 떠받들 듯 고개를 치켜들고 온나연을 둘러쌌다. 이어서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던졌다. 여정훈은 좌우로 여자를 끼고 클럽에 들어왔다. 장내 열기에 신나서 그도 비명을 지르며 무대 쪽으로 돌진했다. 막 함께 달아오르려던 찰나 깜빡이던 조명 아래로 온나연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온나연? 쟤가 어떻게?!” 여정훈은 눈을 비볐다. 폴댄스 언니가 온나연임을 확인하자, 먼저는 믿기지 않아 멍했고, 곧 이를 악물었다. 그는 앞에 있던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고 사납게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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