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7장
전세는 결국 빛이 머무는 쪽으로 기울었다.
피와 불이 뒤엉킨 전장의 함성과 살육의 외침은 서서히, 그러나 확연하게 승리의 포효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전장 중심에 우뚝 선 이천후는 청명한 영식으로 전장의 구석구석을 꿰뚫고 있었고 그 정신은 물에 비친 거울처럼 맑고 투명했으며 그 안에 전황의 모든 흐름이 비쳤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지존연맹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쌓아올린 공신력과 천로의 모든 세력을 휘어잡던 권위는 이제 썩은 나무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는 것을.
그들이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 천마의 광란을 그저 방관한 그 추악한 민낯은 참전한 모든 수련자들의 가슴속에 불멸의 오점처럼 새겨졌다. 그들이 쥐고 있던 ‘인심’은 이제 물처럼 흘러가 버렸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반면 황촌은 어떠했는가. 이천후가 이끄는 그 작고도 무명의 촌락은 반역자로 낙인찍히기까지 했던 존재였건만 이번 마재앙의 불길 속에서 마침내 그 찬란한 빛을 드러냈다.
그 빛은 피로 물든 충의였고 생명을 내던진 책임감이었으며 문파와 개인의 감정을 뛰어넘은 진정한 대의였다.
황촌이라는 이름은 이제 모든 태허 수련자들의 가슴속에 무형의 비석처럼 우뚝 서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그곳이 곧 ‘대세’였다.
그리고 지금 이천후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형의, 그러나 거대한 운세의 흐름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고 그 기운은 황촌을 감쌌으며 동시에 그의 몸을 중심으로 융합되어 흘러들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천후는 속으로 번갯불처럼 한 줄기 생각을 스쳐 보냈다.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복수심을 뒤로 미룬 채 천마를 바로 노린 건 정말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만약 내가 사사로운 원한에 눈이 멀어 지존연맹의 다른 보물 광맥을 노렸다면 황촌이라는 이름도 지금쯤 수치의 십자가에 못 박혔겠지.’
...
전장 곳곳에서 수많은 수련자들이 분노의 함성을 토해내며 혼신의 공격을 쏟아부었고 그들이 펼치는 법보와 신통은 찬란한 빛을 그려냈다.
그 속에서 수십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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