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6장
그 말끝에 스며든 은근한 기류는 마치 보이지 않는 실처럼 차디찬 한옥 밀실 안을 조용히 감싸기 시작했다.
“아니!”
그 누구보다 마음이 맑고 단단하며 얼음같이 청아한 기운을 지닌 민예담조차 이번에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그녀의 영겁의 세월 동안 얼음장처럼 굳어 있던 미색의 얼굴 위에 살짝 홍조가 스며들더니 가슴이 크게 한 차례 요동쳤다. 이는 분명 천기 성지의 성녀인 그녀조차 지금 이 순간은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천후가 그녀에게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친 게 벌써 두 번째였다.
“푸흣...”
이때 어수환 안에 숨어 있던 금빛 새끼 사자가 웃음을 흘렸는데 그 웃음소리엔 누가 봐도 통쾌하다는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민예담의 들썩이던 가슴은 마침내 차분히 가라앉았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 안에 있던 잔물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졌다.
“지존연맹이 둔 두 수 말입니다. 첫째는 졸을 버려 장수를 지키는 수, 둘째는 살을 베어 독수리를 기른다는 수, 이 두 수만으로도 잃었던 명성의 절반은 되찾고 비선성에 쌓였던 격한 원망도 대부분 잠재울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시선을 다시 이천후에게로 옮겼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겠죠? 그건 황촌이 다시 고립무원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에요.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천후 님은 아직도 천기 성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천후는 그녀의 사고가 이렇게 빠르게 전환될 줄은 몰랐고 입가를 치켜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제가 사람들의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혹시 제가 지존연맹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는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바꾸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곁에 아무도 없다고 해서 칼을 뽑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면 잘 들으세요. 천기 성지가 우리 황촌의 편에 서건 안 서건 지존연맹과의 전쟁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 거대한 산을 가루가 되도록 부숴버릴 때까지 결코 칼을 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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