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8장
만절 성녀의 걸음은 무겁고 침착했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마치 사람들의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퍼져 나갔다.
그것은 흔히 여인의 유연한 걸음이라 부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피와 살을 뚫고 나아온 장수의 발걸음, 천하를 내려다보는 패왕의 강압과 철혈이 실린 행보였다.
검푸른 금사로 짜인 전투용 단장 갑옷은 그녀의 날렵하면서도 강인한 곡선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얼굴은 차디차게 아름다웠다. 칼로 조각한 듯 뚜렷한 윤곽, 그 아래 날카롭게 빛나는 눈은 한 번 스치기만 해도 공기를 갈라낼 듯한 위세를 뿜어냈다.
그녀야말로 천기 성지에서 또 다른 전설로 불리며 강대한 전투력과 무자비한 수완으로 악명을 떨치는 존재인 만절 성녀였다. 그녀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천후 역시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몰려오는 심장을 죄는 위압을 분명히 느꼈다. 그녀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눈동자가 절로 수축했고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 여자를 설명하는 데 딱 한 단어면 충분했다. 두렵다.
그녀는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구천 전장에서 귀환한 죽음의 신 같았다. 몸 주변을 감싸는 기운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혹한 살기였고 그 아우라는 심지어 빛조차 휘어지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차마 숨도 쉬기 어려운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만절 성녀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지만 그녀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천근의 무게가 땅에 박히는 듯한 충격이 뒤따랐다. 그 모습은 한 마리 용이 걷고 호랑이가 달려드는 듯한 절대자의 위엄이 응축된 형상이었다.
그녀의 긴 머리칼은 밤하늘보다 짙고 윤기 나는 먹빛을 띠고 있었다. 본디라면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을 아름다움이어야 할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에워싼 살기와 섞이며 모든 부드러움을 잃었다.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할 차가운 광채 속에서 그녀는 생명의 냄새마저도 밀어낸 듯했다.
만절 성녀의 육신은 신이 빚은 최고의 걸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심지어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