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30장
그러나 단지 한순간의 실성에 불과했다. 차가운 빙수가 정수리에 쏟아지는 듯 이천후의 눈빛 깊숙이 타올라 오르려던 현혹과 황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맑고도 날카로운 경계심이었다.
그는 억지로 뒤엉킨 기혈을 눌러 가라앉히고 얼굴에 드러나던 당혹과 경탄을 지워냈다. 오히려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천천히 걸렸다.
“특별히 급한 일은 없어요. 다만 천후 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의 눈빛이 미묘하게 일렁거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거예요? 조금 전에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거울 저편에서 민예담의 심장은 순간적으로 요란히 종을 울렸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목욕을 막 끝낸 듯한 나른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끄러운 어깨를 살짝 틀며 몸을 미묘하게 뒤척였다. 그 움직임에 따라 검은 얇은 비단이 어깨 위로 유혹적인 곡선을 그려내고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게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 방금... 목욕을 하고 있었거든요.”
“오? 목욕이요?”
“얼음처럼 청결하고 먼지 하나 닿지 못할 성녀가 직접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냥 정신법 하나만 써도 몸은 금세 청결해지지 않아요? 게다가 예담 성녀님처럼 청아하고 세속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면 본디 몸을 감도는 영기로 인해 먼지조차 범접하지 못할 터인데 하찮은 ‘목욕’ 같은 세속의 방법에 의지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사실 고위 수련자라면, 특히 민예담 정도의 지위와 수련 경지를 지닌 존재에게는 일상적인 청결을 위해 굳이 물에 몸을 담글 필요 따위가 없었다.
민예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곧바로 반박이 튀어나왔다.
“제가 목욕한 것은 수련을 위해서예요! 특별히 조제한 약탕에 몸을 담가야만 약효를 제대로 끌어낼 수 있거든요. 수력의 기운으로 약성을 끌어내기 위해서죠...”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높아졌다.
“더구나 이천후 님! 제가 목욕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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