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2화
“죄송해요.”
정유림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지금 여기 말고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긴 해요?”
정유림은 대뜸 김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설아가 당황한 눈빛으로 보이자 정유림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독사의 손에서 20년 넘게 살아왔어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얘기 안 해도 아시겠죠?”
그녀의 과거는 결코 자랑스러운 게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더럽기까지 했다. 악명 높은 독사 밑에서 지내며 정말 단 한 번도 손에 피를 묻힌 적이 없었을까?
정유림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김설아는 당황한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유림이 또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팔에서 거센 힘이 느껴졌고 고개를 돌리자 단호한 표정의 고현우가 보였다.
“그만해요.”
고현우는 한 손으로 가볍게 정유림은 안고선 걸음을 돌렸고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그녀는 마치 순한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렸다.
“알았어요. 현우 씨 말이라면 당연히 들어야죠.”
정유림은 왜 고현우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고현우의 치명적인 매력에 압도를 당한 걸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정유림은 고현우를 처음 본 순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꼈다. 서로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아픈지는 그들만이 알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조차 일반인과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정유림은 고현우에 함께 있고 싶었다. 설령 집이 아주 작다 한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조용한 삶을 이곳에서 그와 함께 즐기고 싶었다. 매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행복이었으니까.
정유림이 떠나려고 하자 김설아는 다급하게 두어 걸음 걸어갔다.
그러자 정유림은 고현우 어깨 너머로 김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앞으로 연락하지 말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김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 말고 유 대표님이랑 같이 가세요.”
정유림은 김설아에게 말했다.
“그게 맞아요. 이제는 대표님에게 명확한 신분을 주셔야죠.”
비록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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