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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게다가 이상한 건 늘 한승기만 올 뿐, 아이 엄마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거였다. 연채연은 한지영의 기초반을 맡고 있었는데 사실 한승기에게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다. 이 남자는 어딘가 너무 거칠고 건달 기운이 짙어서 다른 학부모들까지 일부러 피해 다닐 정도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앞으로는 엄마가 데리러 오면 좋겠다는 뜻으로 한마디 건넸다. “지영이는 항상 아빠가 데리러 오네요. 엄마는요?” 한승기는 특유의 건들건들한 말투로 대답했다. “죽었어요.” 연채연은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지영까지 한마디 보탰다. “동남아에서 죽었어요.” 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울리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네 살짜리 아이가 죽음이 뭔지 자세하게 알 리 없었다. 동남아에서 죽었다는 말은 그냥 동남아에서 일한다는 말이랑 비슷한 의미인 줄 아는 나이였다. 연채연은 순간 말문이 막혀 급히 사과했다. “아... 미, 미안해요.” 심민지는 한승기가 동남아에 사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매달 그쪽으로 출장 가곤 했는데 요즘은 왜 출장 가지 않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내가 세상을 떠나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어떤 선생님은 한지영이 안쓰러워서 옆으로 불러 장난감을 고르게 했다. 처음에는 한승기도 비교적 담담한 톤이었지만 한지영이 자리를 비우자 바로 표정이 바꾸고 연채연을 향해 진지하고 살기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또 아이 엄마 얘기를 꺼내면 진짜 죽여버릴 겁니다.” 연채연은 그대로 다리가 풀려 버렸다. 심민지가 급히 다가가 연채연을 붙잡고 목소리를 낮춰 사과했다. “죄송해요, 승기 오빠. 저희가 이런 사정을 몰랐어요.” “선생님들 입단속 제대로 시켜.” “제가 다 전달할게요. 정말 죄송해요. 이런 상황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때 한지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자 한승기는 순식간에 자상한 아빠 모드로 전환했다. “지영아, 심 선생님께 인사해야지.” 심민지는 쪼그려 앉아 웃으며 말했다. “지영아, 오늘 정말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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