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바둑판 뺏기
서아린은 연회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수만 갈래의 시선이 제 몸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배문수를 비롯한 배씨 가문 식구들이 일제히 자신을 훑어내리는 기세에 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회장님,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생신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아린이 비단함의 뚜껑을 열었다. 머리까지 맑아지는 듯한 약초 향이 은은하게 번졌다. 어찌나 싱그러운 향인지 팽팽하게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마저 순식간에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구경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던 주민우와 심유라는 함 속에 든 것이 별 특징 없는 바둑판 세트인 것을 확인하고는 실소했다. 주민우의 입매가 비릿하게 뒤틀렸다.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물건을 무슨 배짱으로 들고 왔나 싶었다.
그는 서아린의 선물이 저 구석 어딘가로 내팽개쳐지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녀는 울먹이며 제 품으로 돌아와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주민우는 그 순간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민우의 표정은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배문수는 직접 몸을 기울여 서아린에게 다가가더니 그 바둑판을 손수 받아 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코끝에 스치는 향을 음미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둑알이 이리도 맑고 투명하구나. 알의 크기도 고르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게다가 이 은은한 향은 대체 무엇을 넣은 것이냐?”
서아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몇 가지 약초를 달여 색을 입혔습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불면증이나 두통을 다스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준비했습니다.”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배윤슬도 흥미로운 듯 다가와 바둑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바둑판, 직접 만든 건가요?”
서아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자 사람들이 주변으로 물밀듯 밀려들었다. 육지환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 아침 서연오의 집에 고양이를 맡겨 놓으러 갔을 때, 베란다에서 무언가를 말리고 있는 것을 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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