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걱정하지 말라고?”
김미정이 냉소를 지었다.
“그릴 리가. 결혼식 전에 널 이 집에서 쫓아낼 거야.”
말을 마치고 어안이 벙벙한 선우연을 뒤로한 채 바다에 뛰어들었다.
풍덩 하는 소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미정아!”
배진우의 목소리가 선실에서 울려 퍼졌다. 곧이어 박차고 나와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제 자리에 얼어붙은 선우연은 손발이 싸늘해지면서 온몸이 굳어버렸다.
배진우는 가까스로 김미정을 끌어 올려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김미정은 연달아 기침하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물기가 어린 눈동자는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연이가 날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방심한 틈을 타서 바다에 밀어 넣었어. 그래도 너무 원망하진 마. 그 아이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배진우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도대체 언제쯤 그 더러운 마음을 버릴 생각이야?”
선우연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 이제 진짜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언니를 밀친 적도 없어요.”
“입만 열면 거짓말이구나. 이따가 두고 봐.”
배진우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김미정을 안아 올렸다. 이내 빠르게 갑판을 벗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선우연은 마치 심장을 도려낸 것처럼 아팠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수만 번 되뇌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저 이제 진짜 아저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날 밤, 선우연은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배진우가 남긴 ‘두고 보자’라는 말은 처벌을 예고한 셈이었다.
리베 아카데미에 있었던 몇 년 동안 도망과 애원은 결국 고통만 부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래서 순순히 벌하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비바람과 함께 배진우가 들어섰다.
“무릎 꿇어.”
선우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분고분한 그녀의 태도에 배진우는 흠칫 놀랐다.
이내 벽에 걸려 있던 채찍 하나를 집어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와서 말 들으면 무슨 소용 있어? 내가 널 너무 오냐오냐 키운 건가? 무법천지가 따로 없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찍으로 그녀의 등을 내리쳤다.
선우연은 마치 감전된 듯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대답해!”
배진우가 버럭 외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어요.”
“그래?”
배진우는 콧방귀를 뀌더니 채찍을 번쩍 치켜들었다.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했는데?”
짝!
화가 난 듯 목소리가 살짝 떨렸고, 그녀의 등을 다시 한번 내려쳤다.
한 번.
“왜 미정을 바다로 빠뜨린 거야? 너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두 번.
“왜 날 좋아해? 우리 10살이나 차이 나는 거 몰라?”
세 번.
“왜 그렇게 뻔뻔해? 널 키워준 사람인지 알면서 감히...”
쉰두 번.
“대체 왜 이렇게까지 어리석은 거야. 내가 널...”
분노에 이성을 잃은 배진우는 채찍을 몇 번 휘둘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속마음까지 무심코 내뱉을 뻔한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가정부가 울면서 달려왔다.
“도련님, 제발 그만 하세요.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란 분이라 쓰러지면 어떡해요! 이미 피가 흥건한데 안 보이세요?”
배진우는 그제야 우뚝 멈추더니 선우연을 내려다보았다.
등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었고, 바닥에 피가 고여 그의 구두 밑창까지 흘러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끝까지 고개를 숙인 채 눈물 한 방울 없이 애원조차 안 했다.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공허하면서 무심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왜 아프단 말도 안 해? 엄살이 네 특기였잖아.”
선우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안 아프니까요.”
리베 아카데미에서 맞고 참은 것에 비하면 아픈 축에도 못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갈라졌고 안색이 창백했다.
“끝났어요? 이제 가도 돼요?”
배진우는 그제야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안 아플 리가 없잖아. 이렇게 많이 맞았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고?”
곧이어 옷을 벗기자 뒤에 있던 도우미가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반면, 그는 동공이 커지더니 말문이 턱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