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배진우의 몸이 흠칫했다. 시선은 선우연에게 향했고 망설임과 갈등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고 마치 심장이 움켜잡힌 듯 숨이 턱 막혔다.
결국 입술만 달싹일 뿐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다.
의사가 서둘러 재촉했다.
“보호자분, 환자가 이미 통증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시간을 끌수록 흉터가 남을 가능성이 커지니 서둘러 결정하셔야 합니다.”
배진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마치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먹은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선우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입술이 덜덜 떨렸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끝내 내뱉지는 못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분명 울고 싶었지만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마 리베 아카데미에 있을 때 눈물샘이 마른 듯했다.
그녀는 마치 영혼 없는 껍데기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수술실에 끌려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통증으로 의식을 잃었다는 김미정이 갑자기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고 전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의사들을 바라보았고 목소리에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작하시죠? 마취는 하지 말고 피부를 한 점 한 점 잘라내세요.”
의사와 간호사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폈고 차마 그녀의 명령에 거역하지 못했다.
몇몇 간호사가 다가가 선우연의 팔다리를 꽉 잡아 수술대에 고정했다.
선우연은 저항하는 대신 가만히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칼날이 피부를 긋는 순간 극심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졌다.
선우연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끝까지 이를 악물고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살점이 뜯겨나갈 때마다 선혈이 상처를 따라 흘러내려 수술대를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관절이 하얗게 질렸고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으나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김미정은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두 눈은 조롱이 가득했고 얼굴은 흡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괴물이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찍소리하지 않는다니.”
선우연은 묵묵부답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칼날이 스칠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을 꾹 참고 견뎠다.
칼은 그녀의 피부를 잔혹하게 그어냈고 살점이 점차 뜯겨나갔다.
선우연은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고 눈앞이 서서히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수술실 안에는 차가운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고, 김미정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따가 개밥으로 줘요.”
선우연은 끝내 정신을 잃고 눈을 감은 채 기절하고 말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팔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병실은 섬뜩할 만큼 조용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기계음과 간호사들의 속삭이는 잡담뿐이었다.
“배 대표님은 김미정 씨를 정말 사랑하나 봐요. 병문안을 매일 오는 것도 모자라 직접 밥까지 먹여주잖아요.”
“그러니까. 내일 결혼식이래요. 천생연분이 따로 없네요.”
“선우연이라는 여자는 배 대표님이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아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완전 외면당하고 있다면서요? 참 불쌍하군요.”
선우연은 시종일관 입을 닫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속으로는 떠나는 날만 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