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5화
심준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가슴 깊은 곳이 날카롭게 저며왔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게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가희 씨, 인제 그만 고집부려요.”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
심가희는 피식 웃으며 웃음을 흘렸다.
“준영 씨는 도대체 뭘 바라는 건데요? 이제 와서 제 편이라도 들어주겠어요? 은지 싸랑 행복하게 살아봐요. 사람들 시선쯤이야, 당신이라면 다 견딜 수 있겠죠.”
심준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맞받았다.
“가희 씨는 도대체 언제쯤 철들래요? 가희 씨가 지은이한테 한 짓, 지은이는 이미 용서했어요. 근데 가희 씨는 언제쯤 자기 잘못을 인정할 거예요?”
심가희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잘못? 제가 뭘 잘못했죠?”
그건 정말 몰라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심준영의 눈에는, 그저 반성할 줄 모르는 고집으로만 비쳤다.
그의 마음속엔 서서히 실망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심지은이 겪은 일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날, 눈 덮인 산에서 일어난 일... 심가희가 그 사건의 원인이었다는 건 변명이 필요 없는 팩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완전히 놓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의 정, 그 마음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오늘 반지 고르는 건 미뤄요. 기분이 정리되면, 그때 다시 가요.”
그는 더 이상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괜히 입을 열었다간, 또다시 집안이 뒤집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이 벌어진 후, 심준영은 한동안 마음을 놓지 못했다.
심지은이 문제 삼지 않더라도 그는 몰래 심가희의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심지은이 실제로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그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때의 심지은은 다리 부상으로 거의 무너져 있었다.
어릴 적부터 무용을 배워온 그녀에게 그 사고는 곧 꿈의 단절을 의미했다.
결국, 그녀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심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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