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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연주는 박은영을 못 봤는지 계속 유나연을 향해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연이 편한 대로 불러.” 이때 유태진이 시선을 올리고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네가 여긴 왜 왔어?” 싸늘한 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박은영은 깨달았다. 이 남자가 철저히 오해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있던 정하늘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은영 씨 재주 좋네요. 태진이랑 우리 모임 장소까지 알아내고 말이에요. 우리 사이에 뜬금없이 끼어드는 게 안 뻘쭘해요?” 박은영이 여기까지 왜 왔을까? 불륜 현장을 잡으러 온 거겠지. “재미없어 진짜. 태진이가 안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정하늘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훤히 꿰뚫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전에 박은영이 유태진의 침대에 기어오른 후 기자를 시켜서 몰래 사진을 촬영하게 했다. 만약 유태진이 제때 말리지 않았다면 유씨 일가 체면이 바닥났을 것이다. 본인의 결백으로 유씨 일가 사모님 자리를 노리는 여자, 과연 누가 그녀를 우러러볼까? 한편 박은영은 이런 비난과 야유에 진작 적응했다. 유태진의 친구들은 죄다 그녀의 ‘파렴치함’을 혐오하고 있다. 서연주는 유태진의 옆에 앉아 꿈쩍하지 않은 채 자상하게 유나연에게 주스를 따라줬다. 여태껏 박은영에게 시선 한 번 안 줬고 뼛속부터 우아함과 자신감이 차 넘쳤다. 박은영과의 정면 승부를 아예 겁내지 않는 듯한 기세였다. 이런 게 바로 유태진의 편애가 불러온 무모함과 당당함이겠지. 박은영이 모를 리 있을까? “언니, 혹시 기분 나쁜 거 아니죠?” 유나연이 긴장한 눈빛으로 서연주를 쳐다봤다. 박은영이 등장한 순간, 유나연은 괜히 서연주가 내 남자를 뺏어간 여자를 거슬려 할까 봐 걱정했었다. 다만 서연주는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만 지었다. 유태진도 그녀가 오해할까 봐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서 얘기해.” 박은영은 시선을 거두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서 유태진이 담담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차분한 말투지만 그녀의 미행을 단정 짓고 있었다. 박은영은 심장이 움찔거렸다. “괜한 생각 말아요. 태진 씨 찾으러 온 게 아니니까. 태진 씨가 누구랑 있든 상관없어요.” 다 이혼할 마당에 뭘 더 간섭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 그런데 왜 일부러 병가 내고 연주 일도 거절했어? 앞뒤가 안 맞잖아. 용쓰네 정말.” 유태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박은영에겐 병환 중인 외삼촌이 계시는데 고액 연봉의 직장을 어찌 그리 쉽게 관둘 수 있을까? 서연주처럼 학벌이 높은 것도 아니고... 유태진의 무심한 눈빛에 그녀는 어떠한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 수속은 빨리 진행해주세요.” 그녀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더는 이 남자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유나연이 연락 두절이 돼서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주저리주저리 늘려놓고 싶지 않았다. 방금 유나연은 놀란 기색 하나 없었으니 일부러 박은영을 괴롭히려는 수작이 뻔했다. 본인이 인정하지 않는 한 박은영도 해명할 의미가 없다. 그저 하루빨리 이혼 수속을 마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만 유태진은 눈동자가 짙어지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러지? 이혼합의서도 다 보내줬잖아.’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 때마침 정면으로 달려오던 종업원이 그녀의 어깨에 몸을 부딪쳤다. 박은영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유태진의 넓은 품에 안겼다. 청량하고 시원한 백단향이 폐 속까지 스며들었다. 3년 동안 수없이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이 향도 뼛속 깊이 새겨놓은 듯했다.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박은영이 머리를 들자 은은한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태진은 미간을 구기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 아파?” 그녀는 순간 가슴이 움찔거렸다. 암에 걸린 걸 알아버린다면 안 그래도 매정한 이 남자가 절대 그녀를 위해 비밀을 지켜줄 리가 없다. 그때 가서 외할머니가 왜 이혼했냐고 묻는다면 그녀가 곧 죽을 테니 짐이 되긴 싫다고 말하겠지... “아프면 병원에 가봐. 나한테 와봤자 뭔 소용인데?” 한없이 담담한 말투지만 박은영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아무리 단념했다고 해도 가슴이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줄곧 아무 말 없자 유태진은 좀전의 그녀 행동을 되새기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연약한 척하게? 수작 부리지 마.” 가출하고 일부러 이혼하려는 척하더니 이제 와서 연약한 연기라? 이 남자가 또 한 번 단단히 오해했다. 박은영은 뭐라 해명하고 싶었지만 유태진이 미간을 구긴 채 그녀를 밀치고 룸으로 돌아갔다. 박은영은 숨이 턱턱 막히고 혈색이 없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배가 슬슬 아파지니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 진짜 허약해진 모습을 보이기 전에 얼른 이 장소를 벗어나야만 한다. 문득 덩치 큰 체구의 남자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더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한마디 툭 내던졌다. “못생기면 책이라도 더 읽든가.” 박은영이 미간을 구길 때 상대는 아예 그녀에게 반박할 기회도 안 주고 룸으로 들어갔다. 그는 바로 유태진의 친구 김정한이었다. 방금 그 광경을 지켜보고 박은영이 일부러 유태진의 품에 안기려고 수작 부린 거라 오해한 듯싶었다. 그래서 혐오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밀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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