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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다들 내가 심수혁과 결혼한 게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내 카드가 늘 그 사람 손에 쥐어져 있었고 심수혁은 자기 돈은 회사에 써야 한다며 그동안의 생활비와 지출은 죄다 내 월급이랑 부수입으로 감당했다. 나는 가정은 둘이 함께 꾸려나가는 거라 믿었기에 누가 돈을 더 많이 내느냐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도 계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분명히 수입도 적지 않은데 늘 돈이 빠듯하고 저축은커녕 늘 돈이 모자라는 느낌이 들어 못 견디고 결국 카드 명세서를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심수혁이 내 카드를 수시로 긁어 주소민에게 선물을 사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십만 원짜리 한정판 립스틱은 기본이고 수백만 원대의 명품 가방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주소민 생일에는 수천만 원을 긁어 오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 생일 파티까지 열어줬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같은 옷을 2년이나 입고 다녔는데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자는 이유로 새 옷을 사주지 않았고 몇만 원짜리 선물도 비싸다고 하면서 거르고 생일에 편지 한 장 건네는 게 전부였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따졌고 심수혁은 얼굴을 굳힌 채 날 더 이상 못 믿겠다며 또다시 냉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는 내 돈을 안 쓰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그때는 상처받았지만 지금은 담담하다. 그래도 혹시나 해 심수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수십 통을 해도 받지 않았다. 나는 더는 미련 두지 않고 은행으로 가서 카드를 정지시켰고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바빠서 전화 못 받았어. 무슨 일이야?” 심수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 “별거 아니야.” 나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카드가 이상한데? 정지된 것 같아.” “응, 내가 정지시켰어.” “갑자기 왜 카드를 정지시켜? 심심해서 장난치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당신 이제 내 카드를 안 쓰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심수혁은 말문이 막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먼저 이해해 주고 돈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가 막 생겼을 때 내가 큰 수술을 받느라 천만 원 단위의 돈이 필요했는데 그 시기에 그 사람은 몰래 전 재산을 망한 프로젝트에 넣었다. 나중에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고 했을 때도 나는 그저 웃으며 돈은 다시 벌면 되니까 괜찮다고, 당분간은 내 돈을 쓰라고 말했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그 사람도 나를 진심으로 대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사실 그 방식이 그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심수혁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당당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됐어. 너 지금도 신혼여행 안 간 거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잖아.” “희연아, 나는 네가 좀 더 이해심 있을 줄 알았는데 넌 왜 아직도 그렇게 속 좁냐?” “이번만 봐줘. 이번만 다 정리하고 다음엔 꼭 너랑 여행 갈게, 진짜야.” “나 카드를 안 챙겨왔어. 지금 은행 가서 카드 정지시킨 거 해지해. 나 오늘 진짜 중요한 손님 접대 있어.” “10분 안에 해지 안 하면 나 진짜 화낸다?” 전엔 심수혁이 화난다고만 해도 나는 늘 알아서 굽혔다. 그 사람이 일로도 바쁠 텐데 내가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젠 나도 내가 더 이상 끌려다닐 이유도 억지로 이해하려 애쓸 이유도 없다는 걸 안다. [카드 안 챙겼으면 비서한테 부탁하거나 주소민한테 말해. 애초에 이번에 주소민이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출장 간 거잖아. 그 정도는 주소민도 부담할 수 있겠지.] 나는 메시지를 남기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이 집은 내가 전액 현금으로 산 집인데 심수혁이 좋아하는 구조와 층수까지 맞춰서 골랐었다. 사실 집문서에 그의 이름까지 넣을까 생각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걸려 결국 내 이름만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나는 짐을 다 싼 후 바로 집을 부동산에 내놨고 다음 날은 법원에 들러 미리 서명해 놓은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사실 서명을 부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었지만 그날 심수혁은 짐을 들고 허겁지겁 나가느라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마지막 장에 대충 사인해 버렸다. “한 번만 확인해 볼래?” 난 마지막 희망을 품고 물었다. “굳이 봐야 해? 넌 내 아내잖아. 내가 설마 널 못 믿겠어?” 그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소민 일이라면 의심부터 하던 사람인데 정작 나와의 일에는 이토록 무심했다. 그게 ‘신뢰’가 아니라 그냥 귀찮아서 대충 넘긴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서류를 제출하자 직원은 당사자에게 감정 파탄 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이혼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의 다정한 사진을 꺼냈고 우리 부부의 웨딩사진을 박살 내던 심수혁의 영상을 보여줬지만 직원은 단호했다. “직접 통화해서 본인 입으로 감정이 끝났다고 말해야 합니다.” 할 수 없이 나는 휴대폰 전원을 다시 켰고 그러자마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쏟아졌다. 내가 카드 정지를 안 풀었다는 이유로 온갖 말을 보냈고 마지막 문자는 쌍욕으로 도배하며 ‘이번엔 정말 이혼이야’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문자를 법원 직원에게 보여줬지만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결국 심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수혁, 우리 사이가...” “사이? 너와 내가 무슨 사이인데. 너 지금이라도 소민이한테 사과 안 하면 이번엔 진짜 이혼할 거야!” 심수혁은 내가 또 예전처럼 달래줄 줄 알고 차갑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직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처리해 주었고 한 달 뒤면 정식으로 이혼 증명서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이혼’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건 나를 무릎 꿇게 만들려는 협박이었고 예전에 난 늘 그 말에 넘어갔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마음도 통장처럼 ‘인출’만 하고 ‘입금’하지 않으면 결국 바닥난다는 걸 잊은 것 같다. 신혼집을 시세보다 낮게 내놨더니 일주일도 안 돼 바로 팔렸고 나는 중개업소에 들러 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주 날짜까지 확정 지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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