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1화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카운트다운 30초.
“경운, 이제 주요 선로는 전부 찾아냈어. 질문 하나 할게.”
백우상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는데 이때의 그녀는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세 개의 선로가 있어. 너 무슨 색 좋아해?”
백우상은 조경운이 고른 선로를 자르려고 했다. 그리고 이건 3분의 1의 확률이었다. 만약 제대로 골랐다면 이들은 안전할 것이고 잘못 자르게 된다면 오늘 모두 함께 저승길에 오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조경운이 대답했다.
“난 흰색이 좋아.”
흰색은 백우상의 상징적인 색이었기에 조경운이 일부러 흰색을 고른 것이었다.
백우상은 조경운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장난하지 마.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어, 20초 남았다고.”
조경운은 스스로 휠체어를 돌려 백우상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세 가닥의 선로를 잡아당겼는데 손끝에서 흰 기운이 서서히 떠올랐다.
백우상과 조경운은 모두 범속 초월의 고수였기에 이들은 손가락의 힘만으로도 선로를 손쉽게 끊을 수 있었다.
“우상, 넌 무슨 색 좋아하는데?”
조경운이 물었다.
폭탄의 폭발까지 20초 밖에 남지 않았지만 조경운과 백우상은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폭탄의 선로는 마지막 1초 전에 자르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이 20초는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야 했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도 흰색이 좋아.”
백우상이 말했다.
“넌 줄곧 흰색 옷만 고집했고 난 항상 네가 촌스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어.”
“정말이야?”
조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흰색 옷 잘 어울려.”
옆에 폭탄과 함께 묶여있는 두 사람은 조경운이 혈을 고정시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의식은 여전히 멀쩡한 상태였다.
폭탄이 당장 터질 것 같은 이 순간에도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백우상과 조경운의 모습에 두 셰프는 눈물이 흘렀다.
“우상, 만약 우리가 오늘 살아서 무사히 여길 빠져나간다면 우리 사귈래?”
조경운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그 한 마디를 결국 지금 내뱉었다.
백우상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조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자르자.”
카운트다운 5초.
“어느 색 선로를 자를 거야? 네 선택에 따를게.”
조경운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빨간색 빼고 나머지 두 선로 자르자.”
“좋아.”
카운트다운 2초.
탁-
조경운과 백우상은 동시에 힘을 썼고 노란색과 파란색 두 선로는 동시에 끊어졌다.
악-
폭탄과 함께 묶여있던 두 사람도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울부짖었고 조경운과 백우상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폭탄 위의 숫자가 0으로 되었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됐어!”
순간 마음이 놓였고 백우상은 갑자기 온몸의 힘이 풀려 조경운의 품에 쓰러졌다.
사실 누구든 생사를 직면한 이런 상황에서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백우상과 조경운은 이 아찔한 도박에서 결국 승리했다.
사실, 세 개의 선로중 어느 한 개를 자르더라도 폭탄은 폭발되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직 파란색과 노란색을 동시에 잘라야만 폭탄을 멈출 수 있었다.
폭탄을 설치한 사람은 처음부터 이 폭탄을 폭발시키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조경운의 귀신같은 결정이 이 폭발을 막았다.
그리고 조경운 자신도 왜 하필 빨간색을 남겨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로지 직감으로 의존했을 뿐이었다.
백우상은 안정을 되찾은 뒤 가장 빠른 속도로 폭탄을 두 셰프의 몸에서 떼어냈다.
폭탄에서 자유를 되찾은 두 셰프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위험이 제거된 것을 확인한 후, 황진명 등 사람들이 달려왔다.
“조경운 사장님, 백우상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백우상과 조경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백우상은 조경운의 휠체어를 밀고 중원각을 나섰다.
“우상, 방금 우리가 안에서 한 말, 유효해?”
“뭐라고 했었지? 기억이 안 나는데?”
백우상은 일부러 장난을 쳤다.
그러자 조경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까먹었어? 그럼 다시 말할게.”
“됐어, 됐어.”
백우강은 얼른 조경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래도 천왕궁의 천왕인데 사람이 이렇게 많은 밖에서 그런 말 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아?”
“알겠어.”
조경운은 몸을 휠체어에 기댔다.
“천왕궁으로 돌아간 후 다시 이야기하자. 우상, 이제 우리는 사귀기로 했으니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너희 가족들을 만나고 거기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난 전부 너와 함께 헤쳐나갈 거야.”
이 순간, 백우상은 갑자기 침묵에 빠졌고 눈빛은 매우 막연해 보였다.
천왕궁 5대 천왕궁 한 명으로서 백우상은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경운이 한국에 있는 백우상의 가족을 언급하자 백우상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마 하천과 다른 사람들은 백우상이 어릴 때부터 전란국에서 자랐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백우상이 사실은 한국 사람이라는 건 모를 것이다.
게다가 백우상은 한국에 가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가족은 백우상에게 있어 큰 압력인 듯했다.
그리고 이것은 천왕궁 쪽에서도 조경운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때 밖에 있던 크로윌과 폭탄 해체 전문가가 가장 먼저 조경운과 백우상 쪽으로 달려왔다.
“조경운 사장님, 백우상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크로윌은 조경운, 백우상 같은 천왕궁의 거물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사도 마다하지 않고 직원을 구하러 뛰어드는 두 사람의 모습에 크로윌은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필요 없습니다.”
백우상과 조경운은 크로윌 등 사람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오늘 이 일은 반드시 경찰 쪽에서 제대로 조사해 범인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두 분, 걱정 마세요. 저희는 중원각에 폭탄이 설치된 이번 일에 대해서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