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9화 다 죽여
하천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백우상은 몸에서 검은색 주머니를 뒤져냈다. 그러고는 안에 있던 물건을 전부 테이블 위로 쏟아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시계와 핸드폰 같은 것들이었다.
테이블 위는 각양각색의 시계 그리고 각종 모델의 핸드폰들로 가득 찼다.
이를 본 조충원의 안색은 묘하게 달라졌다.
“조회장님, 혹시 이 물건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백우상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조충원을 쳐다보며 웃는 둥 마는 둥 물어보았다.
조충원은 등골이 시려오는 듯했고 당황함을 금치 못했으나, 애써 침착한 모습으로 모르는 척을 했다.
“백천왕님,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직접 설명해드리지요.”
그 말을 끝으로 백우상은 테이블위에 있던 핸드폰과 시계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하기 짝이 없는 부속품들이 하나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제가 다른 능력은 별 볼 것 없어도, 전쟁용 무기 방면으로는 저 백우상만 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조회장님, 중원각에서 폭발사고가 있던 날, 회장님께선 못해도 백여 명은 데리고 들어와 식사하셨었죠. 시계와 핸드폰은 중원각에 들고 들어오더라도 주의 살 일이 없으니 사람마다 시계와 핸드폰을 가지도록 했고 말이죠.”
“그날 CCTV를 확인해봤더니, 회장님이 데리고 온 사람들 중에 33명은 들어갈 때만해도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나올 땐 손목에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렇다면 시계속에 폭탄을 조립할 수 있는 부품들을 숨겨 중원각으로 들여보내고 폭탄이라는 놈을 시켜서 조립하도록 한 다음, 제 중원각에 설치하도록 회장님이 지시한 것이라고 의심해도 충분한 상황, 맞죠? 조회장님, 제 생각이 맞나요?”
백우상은 그 말과 함께 테이블 위에 있던 부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새 미완성품으로 보이는 소형 폭탄이 완성되었다.
“조회장님, 낯익지 않아요?”
이를 본 조충원은 놀란 나머지 몸을 흠칫 떨었고,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더니 급기야 안색마저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하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조충원 쪽을 쳐다보며 냉랭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충원, 내가 알기론 천왕궁이 근 몇 년 한인타운에서 너희들을 곤란하게 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 같은 중국인들끼리 이렇게 외부인까지 끌어들여서 우리 천왕궁을 상대하려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조충원도 더 이상 둘러대지 못했다. 그러고는 다리에 힘이 풀린 것 마냥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
“하천 궁주님, 실은 저도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협박받은 것이라고?”
하천의 눈빛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그 폭탄이라는 놈이 뭐라고 협박하던가?”
이에 조충원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놈…… 그놈이 내 가족들을 납치했어요, 만일 제가 그놈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집에 폭탄을 설치해서 폭발시키겠다고…… 하천 궁주님, 저도 정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놈이 제 가족을 두고 저를 협박하지만 않았다면 절대로 천왕궁과 맞서지 않았을 겁니다.”
“저런, 그런 사정이 있었구만.”
하천은 다시 소파로 돌아가더니 다리를 꼬아 앉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백우상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어항을 산산조각 냈다. 어항안에 있던 거대한 금룡어는 그만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조충원씨, 당신 가족은 이미 5년 전에 다 죽은 걸로 아는데, 폭탄이라는 놈이 당신 가족을 두고 당신을 협박하고 있다니요? 우리가 당신한테는 되게 우스워 보이나 봅니다.”
“그게…….”
조충원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대문 쪽을 향해 달려가더니 도망가려 했다.
그와 동시에 오산 그룹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총을 든 채 떼를 몰아 들이닥쳤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듯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당황한 모습을 금치 못했던 조충원은 갑자기 험상궂은 얼굴을 보였다.
“하천, 백우상, 너희들 말이 맞아. 그래, 내가 사람을 시켜서 폭탄을 들고 들어가게 한게 맞아. 근데 그렇다 한들, 너희들이 날 어떻게 할수 있을 것 같아?”
“세월이 변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천왕궁이 예전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오산 그룹사람 대여섯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오더니 너나 할 것 없이 하천과 백우상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조충원은 그 뒤에 숨어 뭐라도 된 것 마냥 날뛰었다.
“김석훈 패거리는 너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야. 제2세계 라고들 들어봤나? 너희 천왕궁이 무슨 해외에서 가장 큰 조직이라고 불리던데, 우스워서 나참.”
“제2세계에 비하면 천왕궁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게 왜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이 지경이 되도록 해? 이건 너희들이 죽음을 자초한 거야. 내 탓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난 오늘 너희들 목을 따서 제2세계로 가 공을 세울 거야. 그렇게 된다면 나 조충원은 제2세계의 일원으로 될 수 있겠지.”
조충원은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부하들이 총알을 장전하더니 하천과 백우상 쪽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탕탕탕!!!
맑은 총소리와 함께 수많은 총알이 하천과 백우상 쪽을 향해 날아왔다. 사방이 다 꽉 막혀 어디로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이런 사격을 피해낼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하천은 무심한듯 손을 휙 휘두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손바닥 사이로 폭풍이 휩쓸려 나왔고, 하천과 백우상의 앞을 막아주었다.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고속으로 날아오던 총알은 저항을 받기라도 한 듯 공중에 떠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하천은 다시 손을 한번 휘둘렀고, 공중에 떠있던 총알들은 총을 겨눈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훅훅훅!
총에 맞은 자들의 피는 사방으로 튀었고 조충원의 수하들은 순식간에 모두 쓰러졌다. 마지막에는 조충원 혼자 그 자리에 남아있었고, 조충원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랐고, 몸에 힘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이…… 이게 무슨…….”
방금까지만 해도 뭐라도 된 것처럼 날뛰던 조충원은 오금이 저려오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조충원이 다시 하천을 볼 때는 마치 귀신을 보고 있기라도 한 듯했다.
조충원은 한참 후에야 조금 진정한 듯했고 또다시 풀썩하고 무릎을 꿇더니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하천 궁주님, 이건 오해입니다. 오해가 분명합니다, 설명……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우린 이제 네 설명따위 필요 없어.”
백우상은 갑자기 어디서 은색 권총 한 자루를 꺼내들었는지는 몰라도, 조충원의 이마에 대고 총을 한방 쏘았다. 총알은 조충원의 미간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 뒤통수를 통해 나왔다.
조충원은 총소리와 함께 쓰러졌고 바닥은 붉은 피로 가득 물들여졌다.
그리고 이때 하천이 몸을 일으키며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건물 아래는 언제부터였는진 몰라도 혼란에 빠진 지 꽤 된듯했다. 천왕궁 제복을 입은 남자들은 각양각색의 무기를 가지고 무리를 지어 서쪽 거리로 돌진했고, 거리는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오산 그룹 사람들은 하도 맞아서 아주 낭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3분 정도 지났을 때 하천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신 버튼을 눌렀더니 귀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오산 그룹 사람들은 이미 다 해결했습니다. 전에 중원각에 가서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모두 잡았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다 죽여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