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0화 체포
건물 아래에 있는 서쪽 거리는 이미 천왕궁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었고, 하천의 명령과 함께 서쪽 거리는 생지옥이 된지 오래였다.
서쪽 거리 밖에는 경찰측 차량이 몇 대 주차되어 있었다. 책임자 크로윌은 그중 한대 차 앞에 서있었는데 손에 담배를 끼운 채 더 할 나위 없이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님, 지금 서쪽 거리안이 난리투성이라는데,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크로윌을 졸졸 따라다니던 이가 걸어오더니 정의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크로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크로윌은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자의 뒤통수를 치고는 계속해서 욕을 퍼부었다.
“아직 상황파악이 안돼? 지금 천왕궁 궁주가 직접 나서서 오산 그룹 사람들을 해치우겠다고 난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들어가보겠다고?”
“네?”
그 말에 아까 그자의 정의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망연자실한 표정만이 남아있었다.
“씨x.”
크로윌은 또다시 욕을 내뱉었다.
“다들 밖에서 잘 지키고 있어. 천왕궁 사람들이 모두 나가면 우린 그때 들어가서 현장처리한다. 다들 잘 들어, 오늘 밤 이 일, 절대 알려져서는 안돼. 그렇지 않으면 다 끝장 날 줄 알아.”
이때 다른 몇몇 거리에도 값비싼 차들이 속속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차안마다 옷차림을 단정히 한 지위 높은 이가 앉아있었는데, 그중에는 화명 그룹 회장, 서강 그룹의 회장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인타운에 있는 유명 가문의 가주도 있었다.
오늘 밤 그들 모두 서쪽 거리로 왔지만, 아무도 감히 그리로 들어가지 못했다.
모두 어두운 안색으로 차 안에 앉아있었으며 다행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스러워하는 이들은 오산 그룹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기에 천왕궁의 분노가 그들한테까지 불똥이 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반대로 걱정해 하던 사람들은 다들 오산 그룹과 때낼래야 때낼 수 없는 관계였기에 한창 뿔이 나있는 천왕궁 사람들이 혹시라도 자신들을 해할까 걱정했던 것이다.
요 근래에 천왕궁은 국제적으로 또 한 번 명성을 떨쳤다. 이전부터 국내외를 휩쓸고 다니던 이 괴물들은 몇 년 후에도 여전히 업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말인즉 누구라도 천왕궁과 맞서려든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제2세계라도 천왕궁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오늘 밤 쳐들어온 오산 그룹사람들은 천왕궁에 의해 거의 전멸당했다고 보면 된다.
하천은 여전히 오산 그룹 조충원의 사무실 창문앞에 서서는 해가진 창밖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왕궁은 원래부터 그리 좋은 그릇이 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착해빠지기만 했다면 천하 제1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늘 위에 높이 떠있던 달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고 둥글었다. 창밖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유난히 아름답던 달을 더욱 빛내는 것만 같았다.
800미터나 떨어진 건물 위로 갑자기 불이 번쩍더니 채1초도 지나지 않아 하천을 향해 총알이 날아왔다.
이를 본 하천은 손바닥 사이로 기를 끌어모으더니 얼마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힘으로마치 집게로 집듯이 총알을 집어버렸다.
그 총알은 원래 하천의 이마를 명중했어야 했는데 3센치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하천의 어마한 힘에 의해 모양을 잃었고 이와 동시에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형님.”
백우상은 놀란 표정으로 하천을 바라보았다. 하천이 힘을 빼자 그 힘에 제 모양을 잃었던 총알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천은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드디어 나타났네.”
800미터쯤 떨어진 건물 위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총을 쏘기에 적합한 곳에 엎드려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자의 앞에는 바레트 한자루가 놓여져 있었다.
“씨x, 이걸 피한다고???”
800미터나 떨어진 곳이었기에 바레트에 달린 저격 렌즈를 통해 보더라도 맞은편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똑똑히 알 수 없었지만, 예리한 통찰력 덕분인지 하천이 아직 그 자리에 서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저격수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의아해했다.
“반경 1000미터 안에서도 내 총알이 빗나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맞힐 수 있는데. 왜 총에 맞지 않은 거지?”
“왜냐하면 이젠 그런 총 따위로 우리 회장님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됐으니까.”
바로 이때 저격수 뒤로 중저음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몸을 돌려 살펴보았더니 훤칠한 키와 몸매를 가진 남자가 서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애였다.
“네가 여긴 왜!!!”
저격수는 한애를 만난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놀랄 리가 없으니까.
지난번 이국 미란에서, 한애가 미스터 D를 심문하는 틈을 타 미스터 D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바로 이 저격수였던 것이다.
그는 그때 분명 한애까지 해치우려 했을 것이다. 한애가 눈치채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한애는 미스터 D와 같은 처지가 됐을 지도 모른다.
“안녕, 김석훈!!!”
한애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농담이라도 하는 듯 물었다.
“네놈이 중원각을 폭파시킨거지? 저번 이국 미란에서 네 동료를 죽인 놈도 너고, 내 말이 맞지?”
“들켰네?”
김석훈이라는 놈은 한애에게 정체를 들켰지만, 당황한 기색은커녕 키득거리며 웃기 바빴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김석훈이 물었다.
“우린 네놈이 자극적인 방식을 좋아한다는걸 확신했고, 그렇다면 한인타운을 떠나지 않고 계속 여기에 남아서 우리랑 숨바꼭질 놀이를 할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김석훈은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겨우 그 정도 추측으로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아냈다고?”
“그럴 리가.”
한애는 고개를 저으며 손으로 맞은편에 있는 오산빌딩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회장님이 지금 저곳에 서계셔. 기꺼이 네 과녁이 돼주겠다는 회장님 뜻이지. 네놈 성격대로라면 오늘 저녁에 회장님 목을 따내지 않고는 못 배길 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회장님이 저곳에 서서 네 과녁이 되어준 거고. 근데 한인타운에서 저곳을 정확히 겨냥할 수 있는 곳이 네 군데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우리 천왕국 천왕들이 나서서 한 곳씩 지켜보기로 한 거야.”
“나는 마침 이곳을 지키고 있다가 너를 잡게 된 거고.”
“오- 들어보니 제법 그럴 만하네.”
김석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오늘 날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건가?”
한애는 ‘씩’하고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나 한애가 너 같은 애송이도 못 잡으면, 천왕궁 동천왕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달고 살겠어?”
“천왕궁 동천왕? 무서워라.”
분명 국내외로 명성이 자자한 이름이었는데, 김석훈의 귀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이름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 웃음소리에는 못마땅해 하는 눈치가 가득 깃들어져 있었다.
“천왕궁, 천왕궁 따위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다신 그런 말 못하게 해주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애는 김석훈 쪽으로 발을 내딛었고, 곧이어 사나운 기세가 한애의 몸을 타고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태고시절 맹수의 기백을 나타내는 듯했다.
김석훈의 안색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러자 한애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뿜어내었다. 쌍방 모두 내노라 할수 있는 실력을 가진 강자였지만, 맞붙는 순간 우열을 가릴 수가 있었다.
이 김석훈이란 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일가. 그는 올해 겨우 20살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했지만,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부터 실력을 탄탄히 다져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