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마음에 들어?
이건 아무래도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해정 씨, 제 외모는 마음에 드시나요?”
남자의 목소리에 은근한 농담이 묻어 있었고, 그 말에 신해정은 그제야 멍해진 정신을 되찾았다.
자신이 방금까지 상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귀 끝이 화끈 달아올랐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아, 네. 괜찮아요. 잘생기셨어요.”
최대한 태연한 척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배정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이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해정 씨, 저는 현재 IT 계열 회사에서 마케팅팀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봉은 육천만 원대 후반 정도이고, 회사에서 집과 차량을 지원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모아 둔 자산도 조금 있고요. 생활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입니다.”
말투는 차분하고 솔직했다. 자랑도 위축됨도 없이 사실만을 담담하게 전하는 느낌이었다.
신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대략적인 계산을 했다.
부모님이 서울에서 제법 규모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녀의 집안과, 세간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보면 배정빈의 조건은 분명 어울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애초에 이 결혼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협력이었다. 그런 외적인 조건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았다.
“저 정아랑은 십 년 넘게 친구예요. 그 애가 소개해 준 분이라면, 저는 걱정 안 해요.”
배정빈이 곧바로 물었다.
“그럼 해정 씨는 저랑 혼인 신고를 하는 데 동의하시는 건가요?”
신해정은 고개를 저었다.
“협력은 서로 동의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 생각만으로 정할 수는 없죠. 정빈 씨는... 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눈을 들어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배정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정한 눈매에는 농담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해정 씨는 여러모로 충분히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만족합니다.”
너무도 진지한 어조에 신해정의 심장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 얼굴에도 은근한 열이 올랐다.
그녀는 어색함을 감추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구청으로 가죠. 내일 출장이시라면서요.”
“네.”
배정빈이 짧게 대답한 뒤,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맑고 차분한 우드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신해정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조금 뒤로 물리며 손끝을 움켜쥐었다. 거의 밀어낼 뻔한 순간...
찰칵.
안전벨트를 채우는 소리가 났다.
배정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운전석으로 돌아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동을 걸었다.
신해정은 그의 또렷한 옆선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 너무 능숙한 거 아니야?’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고 선을 정확히 지키는 게, 대체 연애 경험이 얼마나 많아야 이렇게 되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혼인 신고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이미 혼인 신고서를 손에 쥔 채 구청 앞에 서 있었다.
배정빈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은색 열쇠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제 아파트 열쇠입니다. 주소는 잠시 후에 메시지로 보내 드릴게요. 필요하실 때 언제든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는 이어서 검은색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이건 제 급여 통장과 일부 예금이 연결된 카드입니다. 비밀번호는 숫자 여섯 개 전부 1이에요. 부부가 됐으니 관리해 주시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전권 위임’에 신해정은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정빈 씨. 저희는 협의로 한 결혼이잖아요. 이런 건 안 주셔도 돼요.”
배정빈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협의라도 부부 역할에는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습니다. 우리부터 부부처럼 행동해야 가족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으니까요.”
반박할 구석이 없는 말이었다.
신해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카드를 받아 들었다.
“그럼... 제가 잠시 보관할게요.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배정빈은 더 말하지 않고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신씨 가문의 본가 앞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전에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배정빈의 프로필 사진은 다소 흐릿한 뒷모습이었다. 여성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고, 아이디는 단순한 알파벳 하나 J였다.
신해정은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아마 예전 연인이겠지.’
문득 박준혁이 떠올랐다. 마음속에는 유채은만 두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과 결혼을 선택했던 남자.
다행히 이번에는 다르다. 신해정은 배정빈에게 어떤 감정도 기대하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막 연락처 이름을 저장하자마자, 휴대폰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서정아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때 어때! 우리 삼촌 만나 봤어? 마음에 들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서정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들떠 있었다.
신해정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응, 만났어. 괜찮더라. 우리... 이미 혼인 신고도 했어.”
“그럴 줄 알았지! 내가 말했잖...”
서정아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잠깐만, 너 뭐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