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윤초원은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임무는 곤충 독을 정화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능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백호 연맹의 곤충 독을 모두 정화하고 나면 다른 연맹으로 가서 정화할 기회를 찾아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번 핫이슈 덕분에 자신의 능력만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니 직접 돌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윤초원은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은 조금만 먹었다.
진우빈과 육성주는 이를 지켜보며 각자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윤초원이 방으로 돌아간 후, 두 사람은 함께 모여 윤초원의 식단 문제를 논의했다.
“내가 듣기로는 순수 인간 여성체들은 영양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더라. 그들의 입맛은 곤충족이 침공하기 전, 그러니까 500년 전 인간들이 먹던 음식을 더 선호한대. 무, 감자, 셀러리, 돼지고기, 소고기 같은 것들 말이야. 이런 재료들은 다 구할 수 있지만 내가 요리할 줄 모르잖아. 도서관 최상층 장서에 아마 이런 재료들의 조리법이 있을 거야. 나는 최상층 출입 권한이 있으니 조리법을 복사해 올게.”
윤초원이 없는 자리에서 육성주의 표정은 확연히 더 엄숙해졌다.
비록 지금 진우빈이 보기 싫었지만 윤초원을 돌보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요리를 전혀 할 줄 몰랐으며 완벽한 꽝손이었다.
“알다시피 나는 요리 실력이 없어. 그러니까 네가 해야 해, 진우빈.”
육성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 어제 윤초원 아가씨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 나도 인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배워서 해주고 싶어.”
진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저택 뒷마당이 넓지 않아? 사 온 재료들은 대부분 로성에서 며칠 걸려 운송된 것들이니 직접 재배한 것보다는 신선도가 떨어질 거야. 나는 로성에서 재배 경험이 있는 남성체를 고용하고 씨앗을 사 와서 네 뒷마당에 채소와 과일을 심으면 윤초원 아가씨가 좋아하실 것 같아.”
진우빈과 육성주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다. 비록 지금 육성주가 총사령관이 되었지만 업무 외의 대화에서 진우빈은 여전히 예전처럼 자연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처럼 육성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일할 때랑 곤충족 상대할 때는 왜 이렇게 머리가 잘 안 돌아가?”
육성주는 진우빈을 노려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히히, 좋은 친구한테 물어봤어. 걔네 집 여성체가 걔를 엄청 좋아하더라고. 여성체 관련된 건 뭐든 잘 알아.”
진우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알겠어. 내일은 네가 집에서 윤초원 아가씨를 돌보고 내가 이 일들을 처리하겠어.”
육성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다음 날 윤초원이 깨어났을 때 햇살은 창문 사이로 비춰 2층 바닥을 밝히고 있었다.
윤초원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꽃향기가 섞인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며 온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집에 진우빈만 남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어제 윤초원이 맛본 음식들이 포장 용기에 담겨 있었다.
아마 진우빈이 아침 일찍 나가서 사 온 모양이었다.
“일어났네. 어서 아침 먹어.”
진우빈은 미소를 지으며 포장 용기 뚜껑을 열고 음식들을 하나씩 식탁에 펼쳐놓았다.
“윤초원 아가씨, 주문하신 물품들이 도착했습니다.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1미터 정도 높이의 로봇이 기계 팔로 여러 상자를 안고 있었다. 기계 손가락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쇼핑백 여러 개가 걸려 있었다.
그 백들 안에는 윤초원이 어젯밤 잠자기 전 쇼핑몰에서 구매한 새 옷들이 들어있었고 상자 안에는 신발이 있었다.
“응, 고마워.”
윤초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로봇의 머리에도 육성주와 비슷한 동물 귀 장식이 달려 있었다.
“육성주는 없네?”
윤초원은 식탁에 앉으며 무심코 물었다.
“도서관에 갔어. 간 김에 씨앗도 사 오고 일꾼도 고용하러.”
진우빈은 숨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가씨가 다른 순수 인간들처럼 영양제나 수인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재료를 사다가 직접 요리해 줄려고. 하지만 이 재료들은 로성에서 며칠 걸려 운송된 것들이라 아가씨 같은 순수 인간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더 좋아할 테지. 성주네 집 뒷마당이 넓으니까 우리가 직접 키우면 더 신선하고 편리할 거야. 어떻게 생각해?”
진우빈은 히히 웃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좋아, 좋은 생각이네.”
윤초원은 동의했다. 사실 그녀도 이곳 음식들이 어딘가 이상해서 잘 먹히지 않았었다.
진우빈은 윤초원이 승낙하자 마음속으로 기뻤다.
‘내 친구는 정말 대단해. 여성체들에 대해 이렇게 잘 알다니, 순수 인간 여성체에 대한 정보까지 정확해!’
“오늘 바빠?”
식사를 마친 후 윤초원이 물었다.
“아니, 오늘은 집에서 아가씨를 돌보기로 했지.”
진우빈은 바로 대답했다.
“그럼 우리 폭주한 남성체를 찾아서 진정시키는 영상을 찍어 다른 연맹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어때? 핫이슈에 또 오르고 싶어.”
윤초원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별방 계정을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도 간단했다.
‘F 급 순수 인간 윤초원’
“라이브 방송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줘. 영상보다 라이브가 더 빠르고 효과적일 거야.”
윤초원은 별방을 만지작거리며 진우빈 옆에 앉았다.
“오늘 바로 가? 좀 더 쉬지 않을 거야?”
진우빈은 약간 놀란 듯했다.
“응, 오늘 가자.”
윤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방금 계정을 만든 후 육성주에게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계정에 인증을 받았고 별방에 게시물도 올렸다.
[안녕하세요, F급 기력 레벨을 가진 순수 인간 여성체 윤초원입니다. 저를 의심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10시에 라이브로 남성체를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세요.]
“정말 라이브를 할 거야?”
진우빈은 칩 화면의 특별 알림음을 듣고 바로 열어보았다. 윤초원이 올린 게시물이 보였다.
“응, 너도 해. 제1인칭 시점과 제3인칭 시점으로 동시에 방송하면 조작 의심을 받지 않을 거야. 난 오해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내 실력을 증명할 거야.”
윤초원은 방으로 올라가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머리를 대충 올리고 양쪽 귀 가닥에 약간의 머리카락을 내려놓았으며 고데기로 살짝 웨이브를 줬다.
새롭고 낯선 곳에서도 예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얇은 소재의 오프숄더 니트와 슬림한 와이드 팬츠는 윤초원의 몸매를 더욱 길고 날렵하게 보이게 했다.
윤초원의 은은한 미소는 고결한 미인이라는 인상을 완성했다.
물론 이건 윤초원의 자기만족이었다.
진우빈의 눈에는 윤초원이 그저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깜찍한 여성체로 보일 뿐이었다.
“윤초원 아가씨.”
진우빈의 귀가 붉어졌고 꼬리도 살랑거렸다.
“출발하자.”
윤초원은 진우빈 옆을 지나갔다.
진우빈은 윤초원이 지나갈 때 풍겨오는 향기에 마음이 설렜다. 여성체의 달콤한 향기였다.
“응.”
진우빈은 바로 따라가 차 문을 열어 윤초원을 조수석에 앉히고 자신은 운전석에 올라 차를 출발시켰다.
“그럼 우리 중매소로 갈까?”
진우빈은 차 안에서 다시 확인했다.
“병원이 아니고?”
윤초원이 물었다.
“병원에 있는 남성체들은 이미 진정된 상태거나 진정이 가능한 부상자들이야. 폭주 후 진정되지 않은 남성체들은 모두 중매소에 수용되어 있어.”
진우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중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