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점 찍어둔 상대
곽지환은 다른 재벌 2세들과는 달랐다. 언제나 깔끔하고 절제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여진성에게 연락해 그의 스위트룸을 잠시 빌려달라고 하지 않는가. 순간 흥미가 생긴 여진성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형, 드디어 봄이 왔나 봐?”
그는 곽지환이 부정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 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서 빌려줄 거야, 말 거야.”
“빌려줄게. 빌려준다고! 친구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가 직접 가서 청소해줄 수도 있어.”
“꺼져.”
그때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
“그래서 어느 집안 귀한 딸인데?”
물론 곽지환은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물었지만 그는 말해주지 않았다.
여진성은 술잔을 들어 그와 부딪치며 느긋하게 웃었다.
“형이 왜 이러는지 어디 한번 맞혀볼까나? 혹시 그분, 형 유혹에 넘어가 주지 않아서 멘붕 온 거야? 아무리 유혹해도 거부해서 상처받은 거야? 아니면...”
여진성은 이내 아래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형 거기에 문제 있는 거야?”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싸늘한 눈빛이 여진성에게로 향했다.
“형, 농담인데 뭘 그렇게 화를 내. 알았어, 미안해.”
여진성은 바로 사과했다.
“이건 사과의 의미로 원샷할게.”
곽지환은 원래부터 과묵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니 더 조용해졌다.
묵묵히 술만 들이켜는 곽지환의 모습에 여진성은 슬쩍 옆으로 다가가 작게 물었다.
“형이 누구 때문에 이러는 건지 알아. 하지만 난 이해가 안 가. 대체 왜 사촌 동생의 약혼녀를 좋아하게 된 거야?”
여진성은 비록 평소에 한량처럼 굴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어젯밤 곽지환이 말해주지 않았다고 해도 그는 바로 곽지환이 데려온 여자가 심가희라는 것을 눈치챘다. 처음 레스토랑에서 심가희와 우연히 만났을 때부터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이상했으니까. 그러다가 나중에 곽지환은 심가희의 맞은편 집을 사버렸다. 이쯤 되면 그 속내가 뻔했다.
다만 이 모든 건 곽지환이 그를 친구로 생각해서 굳이 숨기지 않았기에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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