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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주설아는 친구의 말에 깜짝 놀라며 입을 떡하고 벌렸다. ‘미친 거야? 형부 될 사람을 뺏겠다고?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운해가 기겁하며 이하음의 팔을 잡아당겼다. 사실 이운해는 최씨 가문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줄곧 조마조마했다. 만약 이혜정이 최씨 가문으로 시집가게 되면 이운산의 회사는 2천억 원이라는 투자를 받고 바로 상장해 버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이씨 가문의 모든 것들이 다 이운산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의 집안은 영원히 기 한 번 펴지 못한 채 평생 2인자로밖에 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운해는 이석범이 조금 더 강력하게 이혜정과 진태하의 결혼을 추진해 주길 원했다. “아빠, 저 농담으로 한 말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직접 약속한 혼사 같은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면 할아버지 체면이 뭐가 돼요.” 이하음은 이운해의 손을 뿌리친 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 남자랑 결혼할 거예요.” “이하음!” 이운해는 할 수만 있다면 딸의 뺨을 때려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다. 이제껏 자산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노력한 이유가 다 딸 때문인데 정작 딸은 그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운해야, 일단 진정 좀 해.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이운산이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을 건넸다. 이석범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를 몰라 막막했던 차에 이하음이 결혼하겠다고 나서줘서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하음이가 우리 아버지 체면을 위해서 나서겠다는데 네가 왜 말리려 들어. 아버지가 약속한 혼사는 하음이가 하는 거로 하고 우리 혜정이는 예정대로 최씨 가문과 결혼하게 되면 아버지 체면도 지킬 수 있고 회사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거야. 이토록 완벽한 결론이 또 어디 있어?” “그래, 내 생각도 운산이 생각이랑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운산이 결정대로 하는 게 좋겠다.” 친척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운산의 얘기에 동조했다. 이혜정이 최씨 가문 며느리가 되면 회사는 2천억 원이라는 투자금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운명 역시 그로 인해 크게 변하게 될 테니까. 이운해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 딸을 저딴 놈한테 줘? 내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이하음은 불만 가득한 아빠의 얼굴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그를 설득했다. “아빠, 나 한 번만 믿어줘요. 내가 저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할아버지는 무조건 우리 회사에 힘을 보태주실 거예요.” 이하음은 자신의 생각을 굳게 믿었다. ‘내 추측이 맞을 거야. 진태하 저 남자를 얻게 되면 할아버지는 앞으로 언니가 아닌 우리 집안에 힘을 쏟으실 거야.’ 이운해는 딸의 진지한 눈빛에도 좀처럼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하음아, 결혼은 애들 놀이가 아니야. 네 남은 인생이 걸린 인생 중대사라고!” “등 떠밀려서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음이가 원해서 하겠다는 결혼인데 왜 자꾸 반대해요?” 그때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중년 여성이 다가와 이하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는 우리 딸 응원해. 하음이 너는 엄마랑 달리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이운해를 한번 째려보았다. 한때 명문 가문의 딸이었던 한영애는 많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이면 이운해를 골랐고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가 가문의 냉대를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믿을 거라고는 이운해밖에 없었는데 이운해는 이렇다 할 성과를 한 번도 내지 못했고 그렇게 그녀는 인생의 절반을 어중이떠중이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한꺼번에 뒤집어줄 기회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한영애는 이석범이 진태하를 반겼을 때부터 진태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훑어보니 정말 남들에게는 없는 범상치 않은 기운 같은 것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걸 딸에게 걸기로 했다. 이운해는 아내의 말에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 “역시 엄마가 최고예요! 엄마라면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요.” 이하음은 한영애의 품에 와락 안기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간신히 다시 정신을 차린 이석범은 이하음네 가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이운산 부녀를 바라보았다. “밥을 떠먹여 주겠다는데도 싫다고 마다해? 두고 봐라. 오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테니!”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우리가 후회를 왜 해?’ 이운산은 표정 관리를 한 후 이석범을 바라보며 차분한 말투로 얘기했다. “가문을 위해 한 결정이니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버지가 약속한 혼사는 하음이가 가져가는 거로 해요.” 이석범은 아들의 말에 이가 바득바득 갈렸지만 이 이상 언쟁을 펼칠 힘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미안함 가득한 눈빛으로 진태하를 바라보았다. “태하야, 내가 미안하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친척들의 시선이 전부 다 진태하 쪽으로 향했다. 이운산은 이석범과 진태하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음이네 회사가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적자만 보고 있지만 그래도 매달 2천만 원은 꼬박꼬박 들어오는 것 같으니 하음이와 결혼해도 먹고 살 걱정을 없을 거야.” 즉, 이 정도로 만족하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라는 뜻이었다. 진태하는 지금 상당히 난감한 상태였다. 이씨 가문의 큰 손녀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어느샌가 처제와 결혼하게 되어버렸으니까. 이석범은 진태하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태하야, 사람들 눈치 보지 말고 네 마음이 가는 쪽을 택해. 누굴 택하든 내가 어떻게 해서든 꼭 결혼시켜 줄 테니까!” 진태하는 그 말에 먼저 이혜정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혜정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그를 경멸하고 혐오스러워했다. 반면 이하음은 이혜정과 달리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기대가 섞인 눈동자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얼굴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이하음이 이혜정보다 몇천 배는 더 나았다. 게다가 이하음은 아직도 그와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주먹까지 불끈 쥐며 그에게 협박 아닌 협박까지 건네고 있었다. 진태하는 피식 웃더니 이석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한테 이씨 가문의 어르신을 만나거든 자신을 모시던 것과 똑같이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르신의 뜻에 따를 겁니다.” 진태하가 이석범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애초에 혼인을 약속한 것도 이석범과 그의 스승인 진강호였기에 신부를 바꾸는 것도 그들이 결정할 문제였다. 이석범은 조금 전에 진태하가 두 손녀를 보던 눈빛을 한번 떠올려보았다. 이혜정과는 몇 초밖에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것에 반해 이하음과는 꽤 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사실 이것만 봐도 진태하가 누구를 더 원하는지는 뻔했다. 하지만 진태하는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을 묻어두고 그에게 결정권을 넘겨주었다. ‘내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일 테지. 이러니 내가 안 좋아할 수가 있나.’ 잠시간의 침묵 후, 이석범은 이하음을 바라보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음이 네가 태하와 결혼하도록 해.” 그 말에 이운산은 그제야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이혜정이 최영훈과 연애한다는 비밀을 지켜오느라 고생했던 것도 오늘로써 끝이었다. 한편 이하음은 결혼을 원했던 것에 비해 그다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마음을 바꿔 갑자기 진태하와 자신의 결혼을 허락하니 조금 어리둥절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결혼이라고? 내가 밀어붙인 결혼이기는 하지만 이게 맞나? 나 정말 앞으로 얻게 될 이익 때문에 오늘 처음 본 남자랑 결혼하려고 한 거야?’ “참, 레이만에 사둔 별장은 하음이와 태하의 신혼집이 될 거다.” 이석범은 그렇게 말하고는 줄곧 옆에 있던 양복 차림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장 변호사, 빠른 시일 안에 집 명의를 바꾸도록 해.” 장 변호사는 그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장님.” “레이만?” “어르신이 레이만에 집을 샀다고?” “운산이 배 좀 아프겠는데?” 친척들이 입을 떡 벌린 채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레이만은 레이 그룹 산하의 부동산으로 매매가가 어마어마했다. “어르신 혹시 수중에 있던 돈을 전부 혜정이 신혼집에 쏟아부으신 거 아니야?” “아... 아버지, 대체 언제 레이만에 집을 사신 거예요?” 이운해가 벙찐 얼굴로 물었다. 레이만은 제일 작은 평수 대의 집도 몇백억 원씩이나 하는 그야말로 부자들에게만 허락된 초호화 주택 단지였다. ‘아버지 설마 그간 내가 자금 문제로 도와달라 했는데도 줄곧 무시했던 이유가 레이만에 집을 사서였던 건가?!’ 이혜정은 집 얘기에 얼굴이 완전히 굳어서는 이석범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원래는 제 이름으로 된 집이었던 거죠? 그러면 그대로 놔두시고 그냥 그 집, 제 결혼 선물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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