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2장 오후에 시간 있어요
그런데 이제 와 보니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는 거였어?
민서희는 그 말에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이에요? 잘 먹었다니 다행이에요.”
“그럼요. 그것도 엄청 깨끗하게 다 먹었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위층으로 올라간 민서희는 고민 끝에 박지환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뒤로 밀었다.
“음식은 다 드신 거예요?”
살짝 난감해진 박지환은 차갑게 답했다.
“오해하지 마.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해서 다 먹은 것뿐이야.”
어설픈 핑계에 개의치 않은 민서희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긴장한 손을 뒤로 젖히고 손바닥을 움켜쥐었다.
“당신...”
박지환은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며 말을 잇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서희는 심호흡을 한 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내일 시간 돼요?”
박지환은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지만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저 담담히 말을 건넸다.
“시간 돼. 왜?”
“시간 되면 내일 나하고 어디 좀 같이 가 줄 수 있어요? 시간하고 장소는 모두 내가 준비할 거니까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 당신 시간을 많이 빼앗지 않을게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의 얼굴은 무표정이었고 심지어 약간의 냉담함이 묻어있었다.
기나긴 침묵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된 민서희는 곧이어 박지환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민서희는 한결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이에요?”
박지환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지켜야지. 내일 오후에 별장에 있으니까 나갈 때 나한테 알려줘.”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 몰랐던 민서희는 기뻐하는 동시에 몸을 앞으로 내밀어 박지환의 입가에 키스를 했다.
박지환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민서희는 먼저 당황해진 채로 몸을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의 다급한 모습을 보며 손끝을 올려 방금 닿았던 입술 위치를 만져보던 박지환은 검은 눈동자가 고요해졌다.
곧이어 그는 그곳을 거칠게 문질렀다.
약 주고 병 주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아는 민서희에게... 두 번 다시는 안 속아...
방에 돌아와 민서희는 모든 준비를 마쳤고 다음 날 입을 옷도 골랐다.
그녀가 눈이 안 보이니 왕씨 아주머니가 직접 참관하고 있었고 민서희가 한 벌 한 벌 갈아입을 때마다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민서희 씨, 연예인처럼 엄청 예뻐요. 뭘 입어도 아름답기 그지 없네요.”
민서희는 마침내 빨간색 롱 드레스를 선택하고 나오자 박지환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허리 옆 지퍼를 잠그고 박지환에게 물었다.
“예뻐요?”
박지환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눈빛이 그녀의 가슴에 와닿았을 때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워낙 하얗게 눈부신 피부에다 앞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었으니 더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남자로서 외출하게 되면 다른 남자들의 시선이 어떨지를 잘 아는 박지환은 갑자기 불쾌해졌다.
“나하고 나가는데 이렇게 입을 필요 있어?”
민서희는 웃음이 약간 굳어진 채 다급히 치마의 옷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 그래요? 중기 씨가 이 옷이 이번 여름 신상이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당신하고 외출할 때 입으면 예쁠 것 같아서...”
박지환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이 옷이 마음에 들어?”
민서희가 답하기도 전에 옷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하던 그는 흰 가디건을 찾아 민서희에게 건넸다.
“이거 걸치면 같이 나갈게.”
민서희는 손에 만져보고서야 외투라는 것을 깨달았다.
멍해진 얼굴로 몸에 걸치던 그녀는 박지환이 자신이 추워할까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아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