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9장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 나설 것이다
호진은의 말을 듣자 박지환의 눈빛에는 죄의식이 더욱 분명해졌다.
“미안해.”
그는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나하고 결혼해서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없게 됐잖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슬프던 표정이던 호진은은 되레 박지환을 달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한 거예요.”
박지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수호에 관해서는 언제든 나한테 알려줘. 네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혼줄을 낼 거야.”
“네. 제발 덜 걱정시켰으면 좋겠어요.”
박지환은 호진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서재로 향하려고 했다.
호진은은 눈을 치켜올리고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지환 씨.”
박지환은 발걸음을 멈췄다.
“뭔데?”
호진은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는 박지환이 민서희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또는 백인언의 최면으로 인해 민서희의 존재를 점차 잊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오는 길에 뭐 이상한 점이 없었나 싶어서요.”
박지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상한 점을 말하는 거야?”
박지환의 안색을 살펴보니 거짓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호진은은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게 아니라 오는 길 비가 왔나 해서요. 오늘 밤에 옛 친구들하고 모이기로 했는데 우산을 챙겨야 되는지 해서 물어보려고요.”
“그렇구나. 비는 안 왔어. 너무 늦게 놀지 말고 일찍 들어와.”
서재로 들어간 박지환은 불을 켰다.
한순간 따뜻한 불빛이 퍼지며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고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더욱 날카롭고 정묘해 보이는 탓에 상위층의 기세를 더욱 우뚝 치켜세우는 듯했다. 다만 유독 그 어두컴컴한 눈동자로는 강렬한 적막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는 평소와 같이 넥타이를 풀어 소파에 내려놓았고 양복 외투를 벗으려고 할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작을 멈춘 박지환은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눈에 들어온 건 홍보 공지였다.
그는 펼쳐보자 민서희의 얼굴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순간 호흡이 거칠어진 그는 눈을 감고 모든 감정을 억누른 뒤 홍보 공지를 서류 맨 밑에 숨겨놓았다.
...
옷을 갈아입은 호진은은 어린이 방을 건너던 찰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어린이 방의 자물쇠를 열어버렸다.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게 된 박수호는 방문이 열린 틈으로 그녀가 하이힐을 밝으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는 그림책을 던지고 창가로 가서 그녀가 진짜로 떠났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이 별장에 자기 혼자만 남겨졌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서재로 빛이 비치고 있었다.
이 집은 더 이상 그의 집이 아니다.
부모도 그의 진짜 부모가 아니다.
박수호는 신발을 챙겨 신고 어두운 틈을 타 별장을 나섰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부모를 찾으러 갈 것이다.
...
“서희야, 여기야.”
정신을 차린 민서희는 서이준이 짐가방을 끌며 손짓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긴 반대 방향이야.”
“미안해요.”
민서희는 감정을 추슬렀다.
시력을 회복한 이후로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디디게 되어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그녀는 공항을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고 그 뼈저린 기억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서이준은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만 생각해. 이번에는 연극 위주로 한성에 들어온 건데 나머지는 차차 생각하자.”
“그래요.”
민서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자아이를 어린이 카시트에 들어 올렸다.
차에 오른 그들은 조용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편히 생활할 수 있게끔 미리 구매해둔 교외에 위치한 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