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0장 누구의 아기야
“서예는 얌전해요. 이거 갑자기 울렸어요!”
“울렸다고?”
서예가 침대에 던진 휴대폰을 쳐다보게 된 민서희는 몸이 굳어버렸다.
시력을 잃은 이후로 한 번도 까먹지 않아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진 전화번호가 눈에 떡하니 들어왔다.
그리고 4년 동안 박지환은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엄마?”
서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서희는 냉정을 되찾은 뒤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박지환 씨? 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한 거예요?”
박지환은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아기...”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의문을 제기했다.
“전화 받은 아기가 누구야!”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민서희는 박지환한테 서예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피하기도 싫었다.
“당신하고 상관없어요.”
민서희는 말투가 차가웠다.
“이건 우리 집안일이기도 하고 내 개인사인데 그 물음에 답해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나하고 상관이 없다고?”
박지환은 강제적으로 차분해지려고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아니지. 너한테 아기가 있을 리가 없잖아. 혹시 배우를 섭외한 거 아니야.”
그는 자신을 설득하고 나니 썩소를 지었다.
“민서희, 정말 애를 쓰네.”
민서희는 멍해 있다 헛웃음이 나왔다.
“박지환 씨, 그 자신감이 어디에서 생겨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왜 아기를 섭외해서 당신 앞에서 연기를 해야 되는 건데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나한테 있어서 당신은 행인들보다도 더욱 낯선 사람에 불과한데 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당신하고 그 어떠한 관계로도 엮이고 싶지 않아요.”
“거짓말!”
박지환은 싸늘하게 말을 건넸다.
“예전에 네가 분명 나를 죽을 정도로 사랑했었는데 그동안의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민서희는 휴대폰을 꽉 옥죄고 있었다.
“당신도 예전이라고 하고 있으면서 사람은 변하기 마련인데 뭐가 의아하다고 이러는 거죠? 예전에는 오리피를 엄청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냄새를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질색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요? 더군다나 당신은 나한테 용서받을 수 없는 못된 짓을 저질렀잖아요.”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그래? 그게 뭔데?”
민서희는 침묵에 잠겼다.
최면을 당한 사람한테 뭐라 설명하기도 그녀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까지 당신한테 알려줘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네요.”
말을 마치고 나니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서이준은 문을 열고 들어와 서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서예더러 널 깨우게 하길 잘한 모양이네. 안 그러면 점심에 돼서야 깨어났을 거잖아.”
서이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박지환은 얼굴색이 파래졌다.
“둘이 같이 살아? 남자하고 단둘이...”
민서희는 통화를 끊어 버렸고 서이준은 의아함을 표했다.
“전화하는데 방해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민서희는 정신을 차리고 차분하게 답했다.
“막 통화를 마치려던 참이었어요. 연우는요? 깨어났어요?”
“응. 아직 어린데 늦잠을 안 자더라고. 너보다 훨씬 더 빨리 일어났어.”
민서희는 살짝 부끄러워하더니 설명을 늘어놓으려고 했다.
“어제는...”
“알아.”
서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 대신에 답해 주었다.
“어제 수만 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줄을 꽉 잡고 있는 바람에 지쳐있는 건 당연해. 내가 어제 네 옆에 있었더라면...”
민서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서예는 민서희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안아달라고 칭얼거렸다.
민서희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박연우는 소파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작은 몸집이 탁자 위에 엎드려 고도의 집중을 내보이고 있으니 민서희도 방해를 하지 않고 그저 곁으로 가서 그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