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3장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
박지환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은 강렬했고 공기는 분노로 불타올랐지만 그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약을 도로 약봉지에 넣었다.
“거짓말까지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길래 뭔가 했더니 피임약이었어? 내가 불쾌해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민서희,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박지환의 반응에 민서희는 잠시 어리둥절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이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박지환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박지환도 당연히 같은 생각을 할 텐데 왜 박지환이 화낼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러게요.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그제야 민서희는 긴장을 풀고 약을 뜯어 입안으로 넣었다.
박지환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민서희가 약을 다 삼키자 박지환이 말했다.
“그 남자가 뭐 많이 가르쳤나 봐? 당신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어. 갖은 수단을 동원해 내 아이를 가지려고 했었지.”
민서희는 박지환이 왜 지나간 일을 입에 올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시절의 그녀가 어리석고 우스웠던 걸까, 아니면 단지 잡담일 뿐일까?
민서희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그 대가로 인해 이렇게 됐나보죠.”
민서희의 말을 끝으로 오랜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 박지환은 소파에 놓인 외투를 집어 들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볼게.”
박지환은 어설프게 화제를 피했고 민서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컵라면을 뜯었지만 순식간에 입맛이 떨어졌다.
고민 끝에 그녀는 사과 한 개를 먹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이곳의 거실은 유난히 넓었다.
그녀는 TV를 켠 채 소파에서 잠을 청했고, 한참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빨리?
민서희는 담요를 잡아당기며 일어났다.
희미한 실루엣에 민서희는 당연히 상대가 박지환이라고 생각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간 거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요? 뭐 두고 나갔어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대는 손을 뻗더니 자극적인 냄새가 잔뜩 배긴 손수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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