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윤서아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혼은 제 자유예요. 그러니 도현 씨 동의는 필요 없어요.”
윤경수는 그 한마디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너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난 네 아버지야!”
윤서아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엄마 돌아가신 지 얼마 됐다고 내연녀를 아내로 들여온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제 아버지라고 하세요?”
그 말은 윤경수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이를 갈며 협박하듯 소리쳤다.
“너 당장 집에 기어들어 오지 않으면 네 엄마가 남긴 유품들 하나도 못 가져 갈 줄 알아!”
뚝.
황정희가 남긴 유품은 윤서아의 마음을 간신히 붙들고 있던 마지막 선이었다.
그래서 집이 역겹고 숨이 막혀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침실 문을 여는 순간 문밖에 서 있던 권도현과 시선이 맞닿았다.
윤서아는 아주 잠깐 멈칫했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같이 가줄게.”
권도현이 손을 뻗어 윤서아의 팔목을 붙잡았다.
“윤씨 가문은 내가 잘 알아. 너 혼자 감당 못 해.”
그녀가 거절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권도현의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윤서아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화면으로 향했다.
김하린이 보낸 사진에는 낯선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곧이어 알림과 함께 음성 메시지가 자동으로 재생됐다.
“도현 오빠, 11시 전에 안 오면... 저 오빠 버릴 거예요.”
윤서아는 입끝까지 치밀어 오르던 비웃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이번에도 그가 같은 선택을 할지 시험하듯 그를 바라봤다.
예상대로 그의 눈에 조급함과 불쾌함이 스쳤다.
[하린아, 장난치지 마. 나 지금 갈게.]
그는 윤서아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마디만 던졌다.
“서아야, 하린이 일 처리하고 바로 갈 테니까 나 기다려.”
권도현은 곧장 몸을 돌려 다급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윤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와 반대 방향으로 무심히 걸어갔다.
‘뭐, 다행인 건가...’
권도현에게 기대할 것이 없으니 실망할 일조차 없었다.
그때 윤서아의 휴대폰으로 낯선 번호의 문자 몇 통이 도착했다.
[봤죠? 제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도현 오빠는 언니 버리고 저한테 와요.]
[설령 제가 살인을 한다고 해도 오빠는 제 편일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언니는 저랑 뭐로 싸우실 건데요? 그냥 더 창피해지기 전에 포기하세요.]
윤서아는 상대가 누군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문자 화면을 캡처해 권도현에게 전송했다.
[하린 씨가 저한테 연락했네요. 사람 관리 좀 제대로 하세요.]
그제야 윤서아는 차 키를 집어 들고 윤씨 가문 별장으로 향했다.
...
윤씨 가문 별장의 거실에는 숨이 턱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윤경수는 윤서아가 들어서자마자 책상을 탁 하고 내리쳤다.
“너, 내가 전화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돌아와! 넌 지금 우리 회사가 권성 그룹을 얼마나 의지하는지 알아? 이혼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냐고! 도현이가 너한테 부족한 게 뭐가 있어. 밖에서 좀 놀면 어때서 그래? 어느 남자가 안 그러냐? 너도 철 좀 들어야지,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윤서아는 윤경수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속이 뒤집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제가 왜 참아야 하죠? 아버지가 도현 씨를 이해하는 건 두 사람 같은 부류라서 그래요. 저희는 이미 이혼 절차를 끝마쳤어요. 그리고 회사가 죽든 살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윤서아는 말을 잇는 대신 시선을 윤경수의 뒤쪽에 있는 진열장으로 옮겼다.
“오늘 제가 돌아온 건 엄마를 자유롭게 해드리기 위해서예요.”
황정희의 물건들이 더는 윤경수 곁에 유품이라는 이름으로 갇혀 있어서는 안 됐다.
윤서아는 옆에 있던 의자를 움켜쥐더니 망설임 없이 진열장 유리를 향해 내리쳤다.
와장창!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안에 놓여 있던 사진, 액자와 작은 장신구들이 함께 떨어져 굴러갔고 몇 개는 충격을 견디지 못해 금이 갔다.
윤경수의 눈이 벌겋게 뒤집혔다.
“너 미쳤어? 그건 네 엄마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야!”
그는 옆에 있던 재떨이를 낚아채 윤서아를 향해 확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