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하지만 예상했던 통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윤서아가 천천히 눈을 뜨자 권도현이 바로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마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현 씨가 왜 여기 있어요?”
권도현은 대답 대신 윤서아의 손을 꽉 붙잡았다.
“불안해서 그냥 왔어.”
그리고 그는 곧바로 윤경수를 돌아봤다.
“아버님.”
그 날카로운 시선과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협박이 실려 있었다.
“저희 권성 그룹 쪽에서 아버님을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봐드렸나 보네요. 그래서 제 와이프를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시는 거겠죠?”
“도, 도현아... 이건 오해야. 서아가 먼저...”
그때 윤서아의 시선이 권도현의 넓은 등을 향했다.
이 장면은... 너무도 익숙했다.
과거 황정희가 위독해 숨이 아슬아슬 붙어있던 날, 윤경수는 내연녀와 밖에서 어울렸다.
텅 빈 병실 앞을 지키고 있던 건 윤서아 혼자뿐이었다.
그때 권도현이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데리고 나타나 황정희를 곧장 응급실로 옮겼다.
그는 겁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린 윤서아에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 걸쳐 주었다.
“어머님은 괜찮아질 거야.”
결국 황정희는 세상을 떠났지만 권도현은 윤서아에게 마지막으로 소중한 이틀을 벌어준 셈이었다.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윤경수가 서둘러 자신을 망나니 같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했던 날도 떠올랐다.
비가 내리던 그 순간, 권도현은 말없이 윤서아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 주었다.
“서아야, 너... 정말 저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어?”
윤서아가 고개를 젓자 권도현은 바로 알겠다고 말하고 하객들 앞에서 선언했다.
“서아는 오래전에 저와 약혼한 사이입니다. 누가 감히 제 와이프가 될 사람을 빼앗으려 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권도현이 그 자리에 나타나 그녀를 지켜준 건 두 집안 어른들 사이의 오래된 인연 때문이었다.
윤서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 자기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그는 두 번이나 윤서아를 불길 속에서 끌어냈고 지금도 또 한 번, ‘제때’에 도착해 그녀를 구해주었다.
“별일 없으면 서아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권도현의 목소리가 윤서아의 회상을 끊어냈다.
그녀는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도 피에 젖은 그의 이마 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예전엔 분명 좋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을까?’
...
별장으로 돌아온 뒤, 의사는 권도현의 이마 상처가 흉터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서아는 쉰 목소리로 겨우 인사를 건넸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치료를 마친 권도현은 한숨을 푹 쉬더니 윤서아를 끌어당겼다.
“내가 불안해서 바로 안 왔으면 네가 다쳤겠지. 그건... 나한텐 죽으라는 거랑 똑같아. 그리고 서아야, 하린이는 그냥 어린애야.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 애 때문에 나랑 다투지 말자. 응?”
윤서아는 아무 말 없이 권도현의 이마에 남은 상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문득 묻고 싶어졌다.
‘나를 아낀다면서 왜 매번 하린 씨 때문에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거예요?’
하지만 그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오하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서아야, 너 학교 게시판 봤어? 빨리 확인해 봐. 하린 씨 이번에 상 받은 작품이랑 네가 예전에 했던 작품이랑 똑같아. 이거 대체 무슨 일이야!”
“뭐라고?”
윤서아는 전화를 끊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게시판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도현 씨... 설마, 도현 씨가...”
권도현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 대회, 하린이한테는 중요하잖아. 걔는 불안해지면 술집부터 가는 애라 혹시 사고 날까 봐 네 작품을 보여줬어. 하린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더라. 그래서 좀... 참고했대.”
그 말에 윤서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오늘 보여준 ‘보호’는 결국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전부 김하린을 위한 선택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권도현을 밀쳐냈다.
“도현 씨, 정말 몰요? 그건 제가 엄마한테 드리려고 만든 선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