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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권도현은 윤서아의 말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공포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는 한 걸음 다가가 윤서아를 뒤에서 세게 끌어안았다. 목소리에는 스스로도 낯설 만큼 거친 숨결이 섞여 있었다. “서아야... 사랑해. 내가 평생 가장 후회하는 건 네가 제일 힘들 때 네 옆에 있어 주지 못한 거야. 그래서 하린이가 너랑 같은 일을 겪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어. 이번 일은... 내가 네 마음을 생각하지 못했어.” 그의 팔은 더 단단히 조여 왔다. 마치 그녀를 뼛속까지 끌어안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이 좀 풀릴까?” 윤서아는 그의 품에서 조용히 벗어나 몸을 돌려 섰다. 눈빛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권성 그룹 지분 20% 주세요.” 그녀는 이제 그럴듯한 사랑 따위에는 미련이 없었다. 손에 쥘 수 있는 것만이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권도현은 긴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건 원래 다 네 거였어.” 그는 곧바로 변호사를 불러 지분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윤서아는 값으로 매길 수도 없는 계약서를 내려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후회하지 마요.” “절대 후회 안 해.” 권도현은 마음속 불안을 숨기려는 듯 그녀를 다시 꽉 끌어안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린이가 졸업하면 연락 끊을게. 다시는 그 애 일로 널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윤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품을 밀어내며 말했다. “피곤해서 먼저 잘게요.” 그녀는 이제 권도현의 어떤 말도 믿지 않았다. 권도현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 윤서아의 안색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녀 옆에 누웠다. 그날 밤 내내 윤서아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마음속에 맺힌 한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윤서아는 결국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긴 밤을 지새웠고 이튿날 아침 권도현에게 이끌려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 시상식장에 도착하자 김하린이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윤서아에게 다가왔다. “서아 언니, 도현 오빠. 드디어 오셨네요.” 그녀는 윤서아의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비웃듯 속삭였다. “제가 말했잖아요. 갖고 싶은 건 결국 다 가질 거라고. 언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그만 좀 버티세요. 언니 작품으로 제가 어떻게 이 상을 따는지 눈 크게 뜨고 보시고요.” 윤서아는 흔들림 없이 김하린을 바라봤다. “훔친걸... 끝까지 지킬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콧방귀를 뀌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무대로 올라갔다. 권도현은 김하린이 떠나자 윤서아의 손을 꼭 잡았다. “서아야, 사람 많으니까 나한테 붙어있어.” 그녀는 조용히 손을 빼내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소란 피울 생각 없어요.” 윤서아는 곧 북극 탐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떠나기 전까지 더는 누구와도 다투고 싶지 않았다. 권도현은 지나치게 평온한 윤서아의 눈빛을 보며 이유 모를 불안에 휩싸였다. 그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무대 위에서 돌발 상황이 터졌다. 김하린이 트로피를 들고 인터뷰를 하던 중 지도교수가 갑자기 질문을 던진 것이다. “김하린 학생, 방금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학생의 작품이 윤서아 학생의 졸업 작품과 싱크율이 90%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김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녀는 다급하게 권도현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서아 언니가... 참고해도 괜찮다고 했어요!” 그때 관객석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참고요? 이건 베낀 거잖아요! 이런 건 다른 참가자들한테 너무 불공평해요!” 윤서아도 몰랐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먼저 이렇게 나서 줄 줄은. 그러나 궁지에 몰린 김하린은 패닉에 빠진 채 윤서아를 가리켰다. “서아 언니... 꼭 저를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요? 저번에는 내연녀라고 소문내더니 이제는 표절했다고까지 몰아가는 거예요? 다들 저를 믿어 주지 않으면... 저, 정말 죽어 버릴 거예요!” 그녀는 울부짖으며 사람들을 밀치고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권도현이 윤서아의 손목을 세게 움켜잡았다. “윤서아, 너 정말... 하린이가 망가져야 속이 시원해? 너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해진 거야! 네가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까 벌로 성남시 추모 공원에 있는 네 엄마 묘도 더는 남겨둘 필요 없겠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김하린이 달려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윤서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도현 씨, 당신을 만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행운이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한 박자 쉬고 한마디 덧붙였다.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기도 해요.” 권도현은 발걸음을 뚝 멈췄다. 형용할 수 없는 불안이 그의 목구멍까지 바짝 차올랐다. “서아야...” 하지만 다음 순간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하린 씨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해요!” 권도현의 눈에서 망설임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는 윤서아에게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옥상으로 내달렸다.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 하지만 그녀는 혼란에 휩쓸린 인파를 거슬러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 쪽에 서 있던 기자에게 그동안 모아 둔 모든 녹음 파일을 건넸다. 그렇게 그녀는 시상식장을 떠났다. 밖에는 오하늘의 차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윤서아가 다가오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출발하자, 우리 이제는 북극으 가는 거야.” “응!” 차가 출발하는 순간 윤서아는 권도현에게 마지막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저는 이제 도현 씨가 필요 없어요. 우리 여기까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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