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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고수혁은 침대 머리맡에 반쯤 기대앉아 내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을 살폈다.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 나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간, 꿈속 마지막에 보였던 낯선 얼굴이 눈앞의 고수혁과 겹쳐졌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그 고수혁이 아니었다. 고수혁은 내 눈가에 고인 희미한 물기를 보았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다미한테는 네가 살린 거라고 말할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중요해?” 고수혁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단호하게 답했다. “중요해.” 하지만 나는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피를 내준 이유가 결국 아이의 입에서 나올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때문이라는 건가... 하지만 나는 다미를 너무 좋게 봤던 모양이다. 며칠 동안 내가 피를 쏟아부어 살려낸 그 아이는 감사의 말 한마디조차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 서아현은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미와 함께 병문안을 왔다. 고수혁은 그녀가 들어오기 직전 슬그머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마치 우리 둘의 관계가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이라도 되는 듯한 행동이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아현은 특유의 다정하고 우아한 톤으로 입을 열었다. “수혁 오빠, 오늘 다미랑 세영 씨한테 감사 인사하러 왔어. 세영 씨는 다미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잖아. 그러니 다미 부모나 다름없지.” 그 말에 고수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미는 나를 보자마자 마치 원수를 본 듯 눈을 치켜떴다. “제가 왜 저 아줌마한테 인사해야 해요? 제가 아플 때는 엄마가 간호해 줬고 엄마가 동화책 읽어줬고 엄마가 재워줬어요! 저 아줌마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는 감사 인사 안 할 거예요!” 서아현은 흠칫 놀란 척하며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연기를 시작했다. “다미야, 엄마가 뭐라고 했어?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잖아.” “저 아줌마는 저한테 해준 거 없어요! 아빠랑 엄마가 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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