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과거에 나는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고수혁의 시선이 컴퓨터 화면을 떠나 내 얼굴에 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빛에 희미한 냉랭함이 스쳤다.
“이제 그만할 거야?”
‘하... 남자의 이런 냉담함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네! 도대체 언제쯤이야 고수혁에게 내가 난리를 부리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관계를 끝내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게 할 수 있을까?’
“내일 너의 생일이잖아.”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풍경과 이혼 합의서가 들어 있는 선물 상자를 건네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고수혁은 잠시 멈칫했다. 내가 그저 선물을 주러 왔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했다.
어쨌든 지금 그와 서아현의 스캔들은 파다하게 퍼져서 누구나 다 알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나는 떠들거나 시끄럽게 굴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선물 상자를 받아 들더니 관대하게 화해의 길을 터 주는 듯 말했다.
“이제 돌아온 김에 앞으로는 괜한 짓 그만해. 내가 매번 이렇게 참아 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알아들었어?”
속이 텅 빈 것처럼 무력감이 나를 에워쌌다.
하지만 그와 다툴 힘조차 나지 않았던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제 며칠 지나면 회사에 출근할 거야. 그래서 앞으로는 회사 근처에서 살 거라서, 여기에 다시는 안 올 거야. 미리 알려주는 거야.”
고수혁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그는 비웃듯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나에게 물었다.
“또 집 나가는 척하는 거야?”
예전에 우리 사이가 좋았을 때 나는 그와 다툰 뒤 집을 나가버린 적이 있었다.
내가 집을 나갈 때마다 고수혁은 6시간 안에 반드시 나를 찾아내 달래서 데려갔다.
그때 나는 그런 편애에 기대 버릇없이 굴 수 있다는 느낌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 이상 그의 편애를 받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붙잡거나 다시 찾아오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떠나려는 순간 나는 그의 깊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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