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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백유라는 암 덩어리처럼 주변 사람들까지 나쁜 기운에 물들게 했다. 사무실 안. 정해은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별일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 성수혁이 그녀를 한번 쳐다보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그래.” 태도가 너무 차가워서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삼키고 싶을 정도였다. 사실 이도 저도 아니게 살 바에 할아버지 몰래 먼저 이혼하자고 말하려 했다. “오빠!” 이때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사랑스러운 사람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정해은은 사무실 문을 등지고 있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아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무실에 들이닥칠 만한 사람은 백유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빠, 저 안 보고 싶었어요? 저는 요 며칠 오빠가 곁에 없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요.” 화려하게 꾸민 백유라는 나타나자마자 계속 재잘거렸다. 차분하고 온화한 정해은과는 달리 백유라한테서는 늘 활력이 넘쳤고, 투지가 느껴졌다. “어머.” 백유라는 깜짝 놀란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언니도 있었네? 미안해. 내가 괜히 방해했나 봐.” 백유라가 뒤돌아 떠나려 하자 성수혁이 그를 불러세웠다. “유라야. 이리 와봐.” “그래도 되는 거예요?” 백유라는 볼이 살짝 달아오른 채 은근히 정해은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은 정해은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편한 대로 해.” 그러고서 곧장 사무실을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바람에 의자에 앉아있던 성수혁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진 것을 보지 못했다. 성수혁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무엇 때문인지 전에 느꼈던 미묘한 불안감이 다시 엄습해왔다. “오빠, 왜 그래요?” 백유라가 예쁘장한 얼굴로 다가와서 물었다. 이때 코끝에 진한 향수 냄새가 전해졌다. “향수 바꿨어?” 성수혁은 웃으며 그녀의 가늘고 부드러운 허리를 감싸 안으며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품에 넘어진 백유라는 다리를 살짝 움직여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코끝이 맞닿으면서 숨결이 오가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금세 묘하게 달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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