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네의 손길 한 번 닿은 적 없었던 강청연은 김신재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찮은 환관 따위가 감히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왕실 공주로서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면서 김신재의 입술을 피하려고 애썼다.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현대에서 온 김신재는 강청연의 생각을 다 꿰뚫고 있었다.
강청연은 혼인한 지 3년 된 어린 여인인 데다가 세자는 무능해서 과부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
한창 사랑이 싹트기 시작할 소녀가 남녀의 일에 전혀 호기심이 없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었다.
곧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김신재, 난 세자빈이다... 읍읍...”
강청연은 머릿속이 하얘졌고 더 이상 몸부림칠 기운도 없어 반항하지 않고 김신재가 뭘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반 시진 후 강청연은 홍조를 띤 얼굴로 지붕 위의 거미줄을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당장 내 몸 위에서 썩 꺼지지 못할까!”
김신재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리거라!”
강청연은 허둥지둥 옷을 입다가 하얀 치마 위에 선명하게 번진 붉은 자국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20년 동안 지켜온 몸을 한낱 환관 따위에게 겁탈당했다는 사실이 너무 허무했다.
강청연은 칼을 주워 김신재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김신재는 피하지 않고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감히 세자빈을 함부로 품었으니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이대로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이곳으로 타임슬립해 온 이과남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여인을 가졌으니 이대로 목숨을 잃어도 여한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 약해진 강청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울분을 토해냈다.
“도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시킨 것이냐?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넌 왜 날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냐?”
왕실 후궁에서 가끔 발생하는 일이라 강청연은 김신재한테 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더럽혀진 후궁들은 외딴곳에서 죽음을 맞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