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정씨는 본명이 정소윤으로 강남 수향의 작은 가문 출신이다. 정소윤은 피부가 희고 아름다우며 음률에 능통하여 덕종이 지난 2년 동안 가장 총애하는 왕비다.
“주상 전하, 환관은 글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어떤 환관이기에 세자 저하가 정4품의 벼슬을 주려고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숙의 정씨의 부드럽고 듣기 좋은 말투는 덕종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무열아, 그 환관의 이름이 무엇이며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이름은 김신재고 나이는 21살입니다.”
이무열의 대답에 숙의 정씨의 얼굴에 약간 놀라는 기색이 비쳤다.
원래 궁으로 들어올 때 김신재를 데리고 온 건 자기 옆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새로운 규정이 생겨 새로 입궁한 환관은 처음부터 궁에서 일할 수 없었기에 김신재는 동궁으로 배정된 것이었다.
그 후 숙의 정씨는 덕종의 총애를 받는 왕비가 되었고 다른 후궁의 질투 때문에 감시가 심하여 김신재와 다시 연락하지 못했었다.
김신재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숙의 정씨는 천 가게에서 가계부를 관리하던 이목구비가 훤칠하고 재치가 넘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쯤 이미 진정한 남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비록 덕종이 가장 총애하는 왕비였지만 아직 그녀는 처녀의 몸이었다.
덕종은 나이가 많아 여인과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었다.
허나 숙의 정씨는 후궁 김씨보다 운이 좋아 반년 늦게 입궁하게 되었다. 안 그러면 멸문당하는 건 정씨 가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덕종은 김씨 가문을 멸문한 뒤에야 초혈이 없는 것이 후궁 김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허나 왕으로서 그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고 또 백만 냥으로 국고를 채웠기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숙의 정씨는 반전이 큰 여인으로 온화하고 정숙한 외모 아래 파도처럼 거세찬 마음을 깊숙이 숨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김신재를 궁으로 들였을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