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김신재는 술잔을 비우더니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 “소신은 술에 취해야 시상이 도는 법이옵니다.” “허, 그런 변명도 다 있구나.” 덕종은 의아한 눈빛으로 잔을 내려다보았다. 조장훈은 비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흥, 어디 시상이 떠오르긴 하겠사옵니까? 실은 머릿속이 텅 빈 것이겠지요!” “그럼 국사께서 지은 방금 그 시는 어떻게 생각하냐?” 덕종이 물었다. 김신재는 딸국질을 하며 술기운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신은 술을 마시느라 잘 듣지 못하였사온데 국사님께서 읊으신 그 몇 마디, 그게 시라 하시다니 참 놀랍사옵니다.” 실은 시의 기본도 안 갖춘 글이었다. 허나 이 나라 조정엔 글맛을 아는 자가 드물었다. 진짜 시가 어떤 것인지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뭐든 그럴듯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무례하고 무지한 환관이 감히 내 시를 조롱하다니! 천한 자가 글맛도 모르고 떠드는구나!” 조장훈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말했다. 이무필 또한 때를 놓치지 않고 곧장 말했다. “아바마마, 소자 보기엔 이자는 말솜씨만 번지르르할 뿐 실상 시상은 텅 빈 듯합니다. 아무래도 술기운을 핑계 삼아 시간을 끄는 듯하니 기한을 정해주십시오.” 덕종은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는 결국 세자와 이무필의 승부처, 다른 왕자들은 형식에 불과했다. 국사까지 시문을 바친 마당에 그저 술상에 앉아 고기나 뜯는 자를 위해 백관들이 줄곧 기다리는 것도 참으로 보기 민망한 노릇이었다. 무릇 품계 낮은 자일수록 앞장서 나서야 예의인데 지금 김신재는 그 예도 체면도 없는 듯 보였다. “좋다. 술 한 잔 다 마시기 전까지만 기다려주겠다.” 그 안에 시를 지어내지 못하면—기회는 더 없을 것이다.” 그러자 김신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전하,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옵니다. 세자 저하께서 호피를 바치시는 동안 소신은 딱 일곱 걸음 안에 천고에 길이 남을 시문을 짓겠사옵니다.” “허허, 그 기개가 마음에 드는구나! 일곱 걸음 안에 천고에 길이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