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이미 환관으로 분장한 이무령은 말을 타고 강청연의 가마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구상철이 저토록 방자하게 굴며 감히 강청연까지 희롱하는 모습을 보자, 이무령은 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 칼자루를 움켜쥔 그녀는 당장이라도 저 무례한 장군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청연이 저 역겨운 늙은이의 아이를 품게 된다면...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일이야.' “구 장군, 즉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알리러 가십시오. 그리고 말을 삼가세요. 연제국의 체면을 더럽히지 말란 말입니다.” 강청연이 단호한 어조로 꾸짖었다. 이 정도면 이미 상당히 엄한 질책이었다. 구상철도 더는 스스로 얼굴을 구기지 않고 웃으며 말머리를 돌려 멀어졌다. 그러나 속으로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강청연이 경성에 시집간 지 삼 년이나 지났건만 아직 아이 하나 없다는 걸 보면 세자가 무능한 것이겠지. 새색시가 홀몸으로 세월을 보내다 보면, 남자가 그리워질 터. 이무열이 옥문관에 가버리면 내게도 차례가 오는 것이야.' “구상철을 반드시 죽여야겠습니다!” 김신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무공이 뛰어난 데다 성깔 있기로도 이름난 자이다.” 강청연이 조용히 경계했다. “염려 마십시오. 제법 눈치는 있습니다.” 김신재가 태연히 답했다. “후사를 위한 밀책은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도 알리지 않은 중대사이니, 경솔한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강청연이 신신당부했다. “소부 주제에 강왕 전하와 말을 섞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아니면 소인이 강씨 가문의 사위라도 된 줄 아셨습니까?” 김신재가 싱긋 웃으며 재치 있게 말했다. “또 감히 나까지 우롱하는 것이냐...” 강청연이 낮게 나무랐다. “그저 기분 풀어드리려 한 말입니다.” 김신재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였다.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이구나. 설령 내가 네 피를 물려받은 아이를 품는다 해도, 앞으로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공손히 굴어야 해.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명을 따르겠습니다... 세자빈마마.